7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ECB) 본부 기자회견장.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첫 기준금리 인상결정을 맞아, 각국 기자들이 120여 석의 회견장을 가득 메웠다.
이날 장-클로드 트리셰 총재에게 쏟아진 질문은 대부분 추가 금리인상 여부. 하지만 한 아일랜드 여기자는 "금리 결정 과정에서 구제금융 국가들에 대한 고려는 없었냐"고 따져 물었다. 아일랜드는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로 유럽연합(EU)에 손을 벌린 나라. 이 기자의 질문은 재정난을 겪고 있는 국가들의 이자부담을 외면한 채, 부자나라들의 물가 염려만 챙기는 것 아니냐는 항의이기도 했다.
ECB는 우리나라 한국은행과 비슷한 딜렘마에 빠져있다. 한은이 물가상승 압력와 가계이자부담 사이에서 고민하듯, ECB 역시 높아지는 인플레압력과 구제금융국가들의 이자부담 사이에서 머리를 싸매고 있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년 가까이 유지해 온 비정상적인 초저금리(기준금리 1.0%)를 가급적 서둘러 정상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충분한 상황. 하지만 이는 독일 등 경기회복세가 강한 나라들에게만 해당되는 현실일 뿐,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빚더미 국가들에겐 '불 난 집에 부채질' 같은 조치로 여겨지고 있다.
때문에 유럽 내 여론은 사실상 '독일 대 비(非)독일'로 갈리고 있다. 최근 경기과열을 염려할 정도로 잘 나가는 독일 경제를 향해 나머지 거의 모든 유럽국가들이 시샘 어린 눈총을 보내고 있다.
반면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왜 우리가 못사는 나라를 위해 희생해야 하느냐"는 반발심이 커지고 있다. 실제 6일 밤 포르투갈 총리의 구제금융 신청방침 발표 이후 7일 오전 독일의 한 방송사가 실시한 긴급 전화여론조사에서 '포르투갈에 대한 EU의 구제금융에 독일이 지원할 여력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무려 92%가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현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독일 내 반발여론을 어떻게 잠재우느냐가 향후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ING 브뤼셀의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재정위기 극복의 열쇠는 순수한 부채 해결이라기보다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어떻게 푸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갈등을 감안한 듯, 트리셰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거듭 '이번 금리인상은 유로존 전부를 위한 결정'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금리인상은 17개 회원국 출신 위원 만장일치로 이뤄졌다"며 "고물가는 재정난을 겪는 국가 국민들에게 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답변을 서너 차례나 반복했다.
향후 금리인상 시그널에 말을 아낀 것도 비슷한 맥락. 그는 수 차례에 걸쳐 "앞으로 연속적인 금리인상이 있을지는 (오늘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인플레 기대심리가 임금상승 등 2차 효과로 이어지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ECB의 선명한 메시지"라며 추가 인상에 대한 여지는 열어뒀다.
한스 마르탱 유럽정책센터 소장은 "ECB는 회원국의 재정이나 경기상황에 앞서 오직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는 데서 위기상황에 종합적으로 대처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며 "EU 즉 '유러피언 유니온'은 이제 부자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부를 이전하는 '트랜스퍼 유니온'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프랑크푸르트=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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