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일의 여황제인 측천무후 시대에 활약한 적인걸(狄仁杰)은 포청천(包青天)과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판관이다. 그가 해결한 범죄 중 하나가 안휘성에서 일어난 소금 사재기 사건이다. 소금은 고대부터 국가의 전매품으로 ‘샐러리’라는 말의 어원이 소금(salt)이라는 것만 보아도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새삼스럽게 소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최근 중국에서 일어났던 소금 사재기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연이어 터진 원전사고로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우리나라 다음으로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인 중국인들이 느낀 불안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서는 소금 사재기 열풍이 불었다. 평소 약 1.2위안(200원)이던 400g짜리 소금 한 포가 17배인 20위안(3,400원)까지 치솟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며칠 만에 값이 폭락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악덕업자들이 폭리를 취한 것은 물론이다.
중국에서 이처럼 소금 사재기가 극성을 부린 것은 방사능 유출로 바닷물이 오염되어 소금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소문과 소금에 함유된 요오드를 섭취하면 방사능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세한 결과. 그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바닷물로 만드는 천일염의 비중이 20%에 불과하고 대부분 암염을 섭취한다. 아울러 방사능 피해를 예방할 정도의 요오드를 섭취하려면 단번에 2㎏ 이상의 소금을 먹어야 한다. 사실상 효과를 보기가 거의 어렵다는 얘기다.
중국은 원전 문제에서도 롤러 코스터를 타고 있다. 중국은 현재 13기의 원자로를 가동 중인데 전세계 원자로 443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재 건설중인 원자로는 27기로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62기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2015년까지 40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16일 중국 국무원이 현재의 원전시설에 대한 안전 점검을 마칠 때까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전면 보류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만큼 일본의 원전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 안전조치를 강화함으로써 국민들의 원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잠재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이미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에너지소비국으로 부상한 중국으로서는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 이외의 에너지원 확보가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결국에는 중국 정부가 원전을 포기하지 못할 거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번 조치가 잠정적이며, 단지 속도 조절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최근 중국 정부가 국가핵안전국의 직원을 현재의 300명에서 2년내에 1,200명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도 원자력의 안전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일환으로 봐야 한다.
소금 사재기와 원전 문제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순 없지만, 두 사안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중국 국민들의 과도한 불안감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소금 사재기의 경우 정보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경제주체가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원전 문제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중국 국민들의 과도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전면 보류라는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물론 결과는 판이하다. 이런 과잉 반응이 소금 사재기에선 엄청난 부작용으로 이어졌지만, 원전 문제에서는 이 참에 안전성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계기로 작용했다. 불충분한 정보가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도 하지만, 돌 다리도 두드려보는 촉매제가 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듯하다.
한재현 한국은행 북경사무소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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