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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명분을 잃어가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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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명분을 잃어가는 전쟁

입력
2011.04.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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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리비아에 핵심적 국가이익을 갖고 있지 않다.” 리비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군사적 개입이 시작된 이후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한 말이다. 이미 벌여 놓은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외의 제 3의 전쟁에는 깊숙이 휘말려 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발언이었다. 그러자 미국 내에서는 이 같은 언급을 6.25 전쟁 직전, 당시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한국을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한 이른바 ‘애치슨 선언’에 견주며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애치슨 선언이 북한의 남침을 초래했듯 ‘적을 이롭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있어 6.25 전쟁 때 유엔군의 개입은 ‘정의’였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그것이 정의로운 전쟁이었는지, 아니면 미국의 핵심적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지를 지금 굳이 따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어찌됐든 과거의 일이어서 그럴만한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리비아 사태에 있어서는 사정이 다르다. 그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국제사회의 개입 강도 및 전쟁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어서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게이츠 장관의 ‘핵심적 국가이익’발언은 ‘전쟁의 격(그런 것이 있다면)’을 크게 떨어뜨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미 미 행정부 출범 초기에 국가안보회의(NSC)를 총괄했던 제임스 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언급은 더욱 적나라하다. 그는 최근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은 미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럽을 위한 것이며 리비아전은 미국 보다 유럽의 이해관계에 훨씬 더 중요한 전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이민자 발생과 테러위협, 석유시장에 미치는 영향, 국가안보 등의 측면을 그 이유로 꼽았다. 이해관계 없이도 개입하고 있으니 ‘정의로운 것 아니냐’고 말하려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보다는 유럽이 주로 전쟁의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얘기로 해석한 것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상당수 미국인들의 시각에서는 리비아 사태가 정의에서, 또는 정의로운 전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전쟁이 정의로울 수 있을까. 또는 어떤 전쟁이 정의로울까. 200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 등의 와중에서 상을 수상한 것이 겸연쩍은 듯 정의로운 전쟁이 있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을 했었다. 당시 그 말은 인류를 위해 최소한도의 ‘필요한’전쟁을 상정한 것으로 이해됐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민간인 보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결의를 채택했을 때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정의의 이름으로 시작했다고 해서 끝까지 정의로울 것이라는 보장은 있을 수가 없고 리비아 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도전은 국제사회에서 정의의 개념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쟁을 설파했던 오바마 대통령도 이번에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있다. 어찌 보면 리비아 전쟁을 정의롭게 만들려는 노력을 아예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최후의 원동력은 모호하더라도 서를 뜻을 모아 만들어가는 ‘정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 국제적 현실이다. 리비아 전쟁을 핵심적 국가이익에 의한 전쟁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정의감에 따른 전쟁이라고 선언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곳에 지상군을 파견해서 목숨을 바쳐가며 카다피를 제거하겠는가.

국제부장 고태성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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