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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 역사의 기록…'한국의 발자크'가 되려 했던 이병주를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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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 역사의 기록…'한국의 발자크'가 되려 했던 이병주를 다시 본다

입력
2011.04.0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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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발자크'가 되고자 했던 나림 이병주(1921~92)의 문학 세계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한 가운데 그의 대표 중ㆍ단편 중 일부를 엮은 두 권이 새로 출간됐다. 15일 경남 하동군 이병주문학관에서 열리는 학술세미나에 앞서 나온 작품은 <마술사 겨울밤> 과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바이북스 발행)다.

65년 44세 때 늦깎이로 등단해 92년 타계하기까지 대하소설 <지리산> 등 80여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긴 이병주는 그 다산성(多産性)과 일부 대중 취향적 요소로 문단에서 홀대받은 측면이 있었지만 최근 수년간 기념사업회가 꾸려지고 이병주문학관이 설립되는 등 재평가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종회 경희대 교수가 함께 새로 엮은 두 권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주축으로 한 소설로 학병 세대로서의 이병주 문학을 잘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학술세미나의 주제도 여기에 초점에 맞춘'일제강점기 역사와 이병주 문학'이다.

68년 발표된 단편 '마술사'는 일제강점기 학병으로 동원돼 미얀마에 배치된 송인규가 사형수로 잡혀 있던 인도인 마술사와 함께 일제 군대에서 탈출한 뒤 마술을 배우면서 겪는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자신 와세다(早稲田)대 불문과에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갔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일제 말의 아픈 역사에다 마술 수련 과정의 몽환적 분위기가 겹쳐져 이야기는 역사와 환각이 중첩되면서 전개된다. 74년 발표된'겨울밤'은 화자가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강점기에서 6ㆍ25전쟁까지의 아픔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담고 있다.

83년 나온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는 일제강점기 만주 벌판을 누비며 항일운동을 했던 노(老)테러리스트를 다룬 중편. 작중 화자인 '나'가 독립지사 하경산을 통해 동정람이란 인물을 알게 돼 그의 삶을 복원하는 형식인데 소설이란 허구적 장치를 통해 한 시대를 기록하고자 했던 이병주의 대표작 중 하나다. 하얼빈(哈爾濱)에서 고아로 태어난 동정람은 조국에 빚진 것이 없지만 항일운동에 나서 특히 악질적 민족 반역자를 제거하는 테러리스트의 역할을 맡았던 인물. 세속적 욕심 따위는 버리고 운명의 부름을 기껍게 받은 동정람은 테러리스트를"원한에 사무친 인간들을 대표하는 엘리트"로, 종내는"우주의 원한을 가슴 속 용광로에 집어넣어 섭리의 구슬로 주조해 내는 언어 없는 시인"으로 명명한다. 작가는 동정람을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넘어선 비범한 천재, 혹은 영웅적 인물로 그려 내는데 그가 즉흥적으로 부는 퉁소 음악도 천의무봉의 가락이어서 20대 여성 음악가 임영숙이 그를 추종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테러리스트의 정치적 자율성은 모더니즘 예술가의 미학적 투쟁을 닮아 있다"며 "일종의 '예술가 소설', 혹은 예술론을 펼치기 위한 서사로 읽을 수 있다"고 평했다. 이는 "어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면 문학은 필연적으로 비굴하게 된다. 문학이 바다이면 이데올로기는 강물"이라는 이병주의 입장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학술세미나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김윤식 교수는 이병주의 작업에 대해 우리 순문학이 처리하지 못한 일제 말기에서 해방 공간에 걸친 문학사적 공백을 채우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자학할 정도로 반성하고 자조할 정도로 자각해야 했고, 일제에의 예속을 문학자 개인의 책임으로서 해부하고 분석해야 할 그러한 청산이 이뤄진 끝에 새로운 문학이 시작돼야 했었다"는 이병주의 항의를 상기시키며 "두 거인(이병주와 선우휘)의 글쓰기가 4ㆍ19 세대의 문학권 속에서 배격, 배제되었지만 그 대신 일반 대중의 지지 속에서 일정한 문학사적 소임을 이뤄 냈다"고 평가했다. 이병주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종회 교수는 "장쾌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성, 호활하고 유려한 문장 스타일은 한국 문학에서 이병주 소설이 아니면 목도하기 힘든 형국"이라며 "젊은 층이 쉽게 이병주 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매년 읽기 쉬운 소책자 형태로 2, 3권씩 계속 엮어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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