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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전문가의 '입'에 함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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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 전문가의 '입'에 함정이…

입력
2011.04.08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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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데이비드 프리드먼 지음ㆍ안종희 옮김/지식갤러리 발행ㆍ412쪽ㆍ1만5,000원

비타민D 보충 영양제가 암 예방에 도움이 되는가?

1999년 연구: 아니다

2006년 연구: 그렇다. 비타민D는 암 발생 위험률을 50%까지 감소시킨다.

2007년 연구: 그렇다. 비타민D는 암 발생 위험률을 77%까지 감소시킨다.

2008년 연구: 아니다.

미국의 유명 의학 저널들에 실린 연구 결과가 이렇게 오락가락한다. 모두 전문가들이 연구한 것인데 말이다. 절대 다수의 전문가들이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고, 오히려 대부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비만을 줄이기 위해 어떤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전문가들마다 다르게 이야기 한다.

이뿐만 아니라 교육 과학 정치 금융 스포츠 오락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의견들을 제시하고, 오류를 범한다. 우리는 과학자, 경제학자, 의사, 경영의 대가 등 전문가들을 믿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무수한 사례를 통해 왜 전문가들이 잘못을 저지르는지, 전문가 오류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미국의 과학 및 기업 분야 저널리스트. 저자가 말하는 전문가는 대중매체가 어떤 주제에 대해 신뢰할 만한 권위자라고 인용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때 알게 모르게 이들이 제시하는 의견을 참고로 한다.

저자는 전문가들이 오류를 저지르게 되는 여러 원인에 대해 설명한다. 그 중 하나는 전문가들이 모두 서로 다른 자료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가령 아이들이 어느 학교를 다니는 것이 가장 나은지에 대해 뉴스위크는 '최고의 고등학교'를, 포브스는 '자녀 교육에 가장 좋은 도시'를, 보스턴매거진은 각 지역의 '최고학교' 명단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들 각 평가에서 사용하는 기준이 다르다. 보스턴매거진은 주 정부가 실시하는 시험 성적과 각 학교의 학생당 지출비용을 비교해 학교 명단을 작성하고, 뉴스위크는 고교 최고 학년을 대상으로 치르는 어드밴스드 플레이스먼트 시험(Advanced Placement exam) 평균점수를 근거로, 포브스는 공공도서관의 평균 대출률을 기준으로 한다. 이 경우처럼 전문가들이 오류를 저지르게 하는 함정에는 그들 자신의 편견과 부패, 비합리적인 사고, 청중에 대한 고려, 능력 부족, 감독의 부족, 자동적 대응 등 여러 가지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검토한다. 가장 엄밀할 것으로 보이는 과학 연구에서조차 오류는 많다. 1980년대 초 미국 심장학계에서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이 나쁘다고 보았다. 심장학자들은 항부정맥 약품을 투약하고 나서 심장박동이 안정되는 것을 발견했고, 이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 심장마비의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90년대 초 이 약물로 인해 심장박동은 규칙적으로 바뀌었지만 사망률은 3배 이상이 됐음이 밝혀졌다. 몇 해전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 연구를 조작한 사례가 국제적 문제가 됐지만 황 박사만이 아니라 프톨레미 갈릴레오 뉴턴 등 과학사에서 탁월한 업적을 낸 인물들도 연구 결과를 조작했다.

경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들어 내는 이론에도 허점이 많다. 수십 년 간 전문가들은 다양한 패러다임과 해결책들을 제시했지만 실제로 높은 성과를 달성한 기업에서 배울 경영교훈은 없다는 것이다. 가령 수없이 많은 경영서와 논문에서 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豊田)의 경영원리가 회자됐지만 도요타의 경영진이 미국의 GM보다 현명하고, 더 효율적 경영기법을 활용한다는 생각은 의심스럽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가 중시하는 것 중의 하나는 집단 사고. 요즘 전문가들은 혼자가 아니라 대학과 병원, 기업, 정부 기관 등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을 받는다. 집단은 편견을 증폭시키고, 소수의 관점을 무시한 채 다수의 관점을 밀어붙인다. 2008년 금융위기를 앞두고 로버트 쉴러, 누리엘 루비니 등 소수의 전문가가 주택 가격 거품에 대해 지적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 시스템이 탄탄하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말에 익숙해져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도 집단 사고의 한 예이다.

대중매체도 전문가가 오류를 저지르는 데 책임이 있다. 대중매체가 전문가의 연구 결과를 전달할 때 재미있고, 도발적이고, 유용한 것 같고, 사람들의 호응이 높은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종종 신뢰성이 떨어지는 내용을 보도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커피를 마시면 수명이 늘어난다'처럼 단순하고 보편적이고 확정적인 경우, 단 한 건의 연구 또는 많지만 소규모로 이뤄진 연구에 근거한 경우, 연구 결과가 획기적 경우, 최근의 큰 실패나 위기가 장래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 준다고 하는 조언들은 일반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도 틀렸는가?'라는 부록에서 "나는 내 주장이 진실임을 입증하지 못했다. 내가 한 것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 수준이다"고 말했다. 책은 우리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판명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복잡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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