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증자 후 상장폐지 CP 발행 뒤 법정관리 소액주주들 날벼락공모가 과다 책정해 휴지 주식 떠안기도실적에만 눈 멀어 리스크 관리 뒷전
브로커리지(주식위탁매매) 비중을 줄이고 투자은행(IB)부문을 키우는 것은 모든 증권사들의 '로망'. 그게 월스트리트 스타일이고, 국내 자본시장법의 취지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국내 증권사들도 IB업무를 대폭 강화하는 추세. 그런데 너무 '올인'을 하다 보니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유상증자를 주관했던 회사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고, 기업어음(CP) 발행 주관을 한 건설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증권사가 운영하는 스팩(SPACㆍ기업인수목적회사)이 합병 공시를 했다가 당일 번복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
모든 책임을 증권사 탓으로 돌릴 수는 없고, 해당기업의 도덕적 해이, 감독당국의 관리소홀, 신용평가사들의 무책임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들과 접점을 이루는 곳은 증권사들이기 때문에 결국 이런 부작용으로 증권사들만 신뢰하락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고 속출
현재 회계법인의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코스닥상장업체 에코솔루션은 얼마 전 유진투자증권 주관 하에 98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같은 이유로 상장폐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씨모텍 역시 동부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을 통해 287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소액주주들로선 소중한 돈을 넣은 회사가 얼마 뒤 상장폐지로 간다니, 황당하고 화가 날 노릇. 화살은 해당기업 외에 증자를 주관한 증권사로 쏠리고 있다. 하지만 해당증권사들은 "감사의견거절이나 상장폐지로 갈 줄 알았다면 주관사를 했겠는가"라며 "금감원 승인절차를 받은 정상적 유상증자였고 투자자들이 스스로 판단해 투자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LIG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열흘 전(3월 10일) 42억원어치의 CP를 투자자들에게 팔았다가 지금도 곤혹을 치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휴지조각이 될 CP를 사게 된 일부 투자자들은 "판매 당시 LIG건설 CP가 연 7.4%의 고이율이고 모기업인 LIG그룹이 보증해 안전하다고 추천했다"며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 금융감독원도 4일부터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불완전판매가 있었는지 집중 점검하고 있다.
교보증권과 KTB증권이 합작 설립한 교보KTB스팩은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합병 공시를 냈다가 몇 시간 만에 이를 철회해 한국거래소로부터 7일 공시위반 제재금 800만원을 부과받았다.
대우증권과 한화증권, IBK투자증권은 올 초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중국고섬의 기업공개(IPO)를 맡았다가 높은 공모가(7,000원) 등 문제로 청약 미달되자, 각각 830만주, 540만주, 101만주를 떠안았다. 하지만 중국고섬은 자회사 회계문제로 지난달 22일부터 거래 정지된 상태. 주가는 이미 공모가의 3분의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외국기업의 IPO는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어 특히 경쟁이 치열한 분야"라며 "증권사들이 중국고섬을 의식해 공모가를 너무 높게 맞춰 줬다가 오히려 손해를 뒤집어 쓰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과당경쟁이 부른 부작용
이처럼 최근 속출하고 있는 IB관련 사고에 대해 증권업계에선 "과당 경쟁이 부른 부작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빨리 브로커리지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IB부문이 커져야만 선진 증권사로 명함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인식 등이 맞물리면서 너도나도 IPO, 유가증권발행주관, M&A 등 IB로 달려 드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리스크관리나 투자자보호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등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기업실사를 부실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엄밀히 말하면 기업실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60곳이 넘는 증권사가 난립한 상황에서, 규모와 노하우에서 밀리는 중소형 증권사들까지 IB쪽으로 쏠리는 것도 문제다. 한 대형증권사 IB담당자는 "작은 증권사는 IB쪽 직원들이 대부분 계약직이라 대형증권사 이직이나 연말 인센티브를 위해 실적올리기식 기업실사를 벌이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과열경쟁의 피해가 투자자들에게 전가된다는 것. 증권사 스스로의 신뢰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전반적 규제완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기업실사 및 증권신고서 승인 절차를 지금보다 까다롭게 만들고 ▦소액 유상증자나 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할 때도 증권신고서 제출을 의무화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