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학생 또 자살전문가들 진단 "영재들 공통된 좌절이 원인"교내 침통 분위기속 총장 규탄 대자보 나붙어
전문가들은 이번 카이스트의 잇단 자살 사태의 원인을 '공통된 좌절을 경험한 이에 대한 모방 및 동조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다.
7일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학생들의 자살 원인이 꼭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우수한 인재들인데 심한 경쟁체제에 몰렸을 때 좌절감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은 같은 집단에서 유사한 좌절 수치 열등감을 경험하고 있었고 모두 애타게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처음 한 학생이 견디지 못하고 비극을 택한 뒤, 다른 학생들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자살하는 것을 보고 상대방이 고통에서 탈출했다고 여겨 이를 학습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 원장은 "가족 친구 등 주위사람이 자살을 택한 경우, 그렇지 않을 때 보다 자살 충동이 80~300배 늘어날 수 있어 이들은 이른바 자살 희생자(victim), 생존자(survivor)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학교당국이 이 위기상황을 직시하고 즉각 심리치료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막연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 주위에서 자살을 보고 난 경우라면 자살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기는 것이 쉽다고 착각하게 된다"며 "당장 학교 당국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교당국에 따르면 7일 숨진 박모(18)군의 성적은 B학점대로 낮지 않은 편이었다. 박군을 상담했던 서울아산병원 신경정신과 한오수 교수는 "그냥 의욕이 없다고 했다. 만성적인 우울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또 한 명의 학생이 스스로 삶을 저버렸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카이스트 학생과 교수들의 표정은 침통했다. 특히 상당수 학생들은 동료의 잇단 자살에도 불구하고 학교 당국이 대책은 선뜻 내놓지 못하면서 자살의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만 여기고 있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특히 서남표 총장이 4일 학교 구성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의 내용이 구성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학내 여론은 극도로 악화한 상태다. 서 총장은 이 글에서 "자살에 총장으로서 사과한다.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면서도 "이 세상 그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각자의 마음과 자세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곽영출(23ㆍ물리학과 4년) 총학생회장은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하려 하지 않고 자살의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각자 노력만 하면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는 태도에 학생들이 황당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6일에는 학생식당 앞 게시판에 재학생의 울분을 담은 대자보가 붙었다. 카이스트 내에서 학내문제로 대자보가 붙은 것은 이례적이다. 대자보를 쓴 3학년 허모씨는 '카이스트의 진정한 주인은 사천학우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성적에 따른 차등수업료와 실패를 용납 않는 재수강 제도 등이 학업부담을 가중시키고 말도 안 되는 학내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며 "학점경쟁에서 밀려나면 패배자 소리를 들어야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고민을 나눌 여유조차 없어 학교에서 행복하지 않다"고 적었다. 그는 "숫자 몇 개가 사람을 평가하는 데 절대적인 잣대가 되었다"며"무한경쟁 정책을 폐기하고 사천학우를 위한 카이스트를 건설하라"고 촉구했다.
새내기 학부생 이모씨는 지난 4일부터 대학본부 앞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1인 시위를 하고 있고, 유모 교수는 서 총장에게 메일을 보내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사태의 중앙에는 징벌적 등록금제도가 있다"며 "이번 기회에 학사과정 전반에 대한 미비점을 점검하라"고 촉구했다.
대전=허택회기자 thheo@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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