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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인생 제2막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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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인생 제2막을 열며

입력
2011.04.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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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한 봄볕이 오랜만에 찾아온 식목일, 카네이션 향 가득한 선배의 편지가 도착했다. "3월 31일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날이에요. 두 아이를 낳고 키우던 4년을 제외한 32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인생 제1막을 닫고 제2막 커튼을 올려 앞으로 어떤 삶을 가꾸어갈지 고민하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지요."

정년 맞은 선배의 편지

"32년 전 월드비전에서 해외 후원자에게 보내는 시설보호아동의 편지를 번역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12년 동안 국제개발NGO의 다양한 업무를 익혔고, 1991년 굿네이버스 창립에 동참하여 토종 NGO가 국내는 물론 제3세계에 뿌리내리는 20년을 함께 했고, 이틀 전 창립 20주년을 축하하고 퇴직을 맞았으니 복에 넘치는 삶을 살았지요. 무엇보다 2001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위탁 받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책임자로서 학대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지역사회가 함께 돌보는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에 전념했던 7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선배의 인생 제1막은 우리나라 아동복지의 역사와 같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1991년 이전에는 친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위한 선별적 아동복지가 전개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전체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을 보장하기 위한 보편적 아동복지가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수 많은 아동의 생존권과 보호권이 보장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제1막의 종소리는 아쉽다. 그 토양에서 후배들은 더 많은 아이들의 발달권과 참여권도 보장하리라 믿는다. 늘어나는 아이들의 행복과 함께 선배의 인생 제2막이 편안한 보람으로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선배도 그 동안 내려놓는 연습을 해 왔지만, 막상 직책을 내려놓는 시원함보다 섭섭함이 더 컸다고 한다. 법정 스님이 산문집에서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다."라고 쓴 글이 든든한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곧 사회심리학자 에릭슨이 강조하는 자아를 통합한 노인의 건강한 삶의 자세다. 인간은 누구나 노년기를 피할 수 없고, 정년퇴직은 사회적 상실에 직면한다. 이때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는 과정에서 회한과 같은 절망에 부딪힐 수 있다. 자아를 통합한 노인은 지나온 일들이 어쩔 수 없었음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나름대로의 인생의 가치를 발견한다. 이러한 노인은 죽음도 겸허하게 직면할 수 있게 된다.

선배의 정년퇴임 소회는 12년 뒤 같은 날 맞이할 나의 정년을 준비하게 한다. '내가 비록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매일 매 시간 최선을 다해 살아주어 고맙다.'는 소회와 함께 지나간 경험들이 진정 나를 단단하게 성장시켰고, 그로 인해 나 자신은 물론 가족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았고, 지금의 내가 있도록 지지해 준 지인들에게도 고맙다.

건강하고 겸허한 삶의 자세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제2막의 여정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인생의 목표를 낮추고, 속도를 줄이자. 지금껏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세워 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도 인색한 채 앞만 보고 달려 왔기에 더욱 그러하다. 5년 전 자동차를 처분하고 대중교통 애용자가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매일 천천히 걸으며 눈 높이도 낮추자. 일상의 비중도 국영수 중심의 일터에서 예체능 중심의 여가로 서서히 바꾸자. 정년을 3년 앞둔 동반자는 이미 5년 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이제 그와 함께 둘만의 연주회를 열 수 있는 악기도 찾아 보자.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재능이 내게 남아 있다면, 아낌없이 기쁘게 나누자. 이제 인생 제2막이 기다려진다.

이혜원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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