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도서관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제 연구실은 우리 대학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덕에 전망은 좋지만 낮은 곳에 터를 잡은 인문대학에 연구실을 가진 선생님들에 비해 약 2도 정도의 기온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느끼는 체감온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직 춥지?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벌써 반팔로 젊음을 자랑하는 예비역 하진이 말고는 대부분 동의를 해줍디다. 4월 저녁 한기에 웅크리고 있다 창밖을 내려 보니 아, 벚꽃이 터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청춘의 학생일 때도 벚꽃이 많은 아름다운 캠퍼스였지만 그 사이 곳곳에 벚꽃나무들이 빼곡하게 심어져 참 황홀한 4월 저녁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대학 전체가 벚꽃으로 만든 화사한 허리띠를 메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꽃띠가 제 허리에도 착착 감기는 기분이었습니다. 박재삼 시인께서 ‘애인이여 이런 때는 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라고 노래한 감정을 알 것 같았습니다. 어둠이 내려 가로등들이 밝혀지자 벚꽃과 불빛이 빚어낸 별유천지의 황홀경이 펼쳐졌습니다. 저는 이미 꽃의 시간을 지나버렸지만 꽃처럼 아름다운 시간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4월은 어떠한지요. 당신도 아직 추위를 느낀다면 누군가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천천히 밤의 꽃길을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시인ㆍ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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