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도 두 손을 들었다. 돈줄이 말라붙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 ‘유로 존’ 17개 국가 중에서 그리스, 아일랜드에 이어 3번째다. 이제 남유럽에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PIGS’국가 중 투항하지 않은 나라는 스페인뿐. 국제 금융시장은 포르투갈의 투항이 ‘유로 존’의 총체적 몰락을 의미하는 신호탄이 될 것인지, 아니면 유럽 재정위기의 마지막 뇌관을 제거하게 된 것인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백기 든 포르투갈, 왜?
주제 소크라테스 포르투갈 총리는 6일(현지시간) 밤 TV 성명을 통해 “정부는 오늘 EU 집행위원회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EU 집행위도 “소크라테스 총리가 조제 마누엘 바호주 집행위원장에게 구제금융 신청 의사를 통보했다”고 확인한 뒤, “바호주 위원장은 유로 존 회원국의 연대를 통해 포르투갈이 어려움을 극복해 내리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고 발표했다. 올리 렌 EU 경제ㆍ통화담당 집행위원도 “포르투갈 정부의 결정은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즉각 환영했다.
이에 따라 EU는 7~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비공식 재무장관회의에서 포르투갈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르투갈은 올 상반기까지 90억유로(15조원)를 갚아야 할 상황인데, 시장에서는 포르투갈에 대한 구제금융 규모를 600억~800억유로로 추산하고 있다.
독자생존을 고집하던 포르투갈이 백기투항을 한 건 재정 불안에 정치 불안까지 겹치면서 국제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기 때문. 추가 증세와 복지 축소를 골자로 하는 정부의 긴축안이 의회에서 부결된 데 책임을 지고 소크라테스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정치 불안이 확대됐고, 가뜩이나 높았던 국채 수익률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 총리 사임 당시 7.63%였던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5일 한때 9%를 넘어서기도 했다. 무디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잇따라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것도 수렁을 더 깊게 했다. 소크라테스 총리는 이날 성명에서 “국제시장에서 자금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불씨 스페인으로 옮겨 붙나
그리스 때도, 아일랜드 때도 당연히 관심은 ‘과연 여기서 끝일까’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만약 포르투갈 다음으로 구제금융의 바통을 이어받는 국가가 있다면 스페인일 공산이 가장 크다. 스페인은 ‘PISG’ 국가 중 유일하게 구제금융 없이 버티고 있는 국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 53%, GDP 대비 재정적자비율 11.2%’ 등 정부 재정도 좋지 않지만, 더 큰 뇌관은 금융 부실이다. 지난해 EU 20개국의 91개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던 7개 은행 중 5곳이 스페인 저축은행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급락하면서 그 이전 모기지 대출을 중심으로 급성장한 스페인 저축은행의 부실이 크게 확대된 탓이다.
그래도 아직은 스페인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이종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스페인 정부의 고강도 긴축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고, 은행권 적자도 축소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럽 경제의 5위 대국인 스페인이 붕괴되면 유럽 국가 전체가 공멸할 수 있는 만큼, 유럽 각국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스페인만큼은 지켜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스페인은 어떠한 형태라도 국제사회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은 투기세력들이 스페인을 공격 타깃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원은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헤지펀드의 공격이 스페인에 집중될 수 있다”며 “이 경우 스페인 재정위기가 부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