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지원인 제도를 두고 재계와 변호사업계가 연일 날카로운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제도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의 상장 회사에 내부 의사 결정과 업무와 관련된 법률 자문을 해주는 준법지원인을 1명 이상 두도록 하고 있다. 변호사나 대학에서 5년 이상 법학을 가르친 교수,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 등이 그 대상이다.
준법지원인제가 담긴 상법개정안은 2009년 노철래 미래희망연대 의원 등이 발의했지만 처리되지 않다가, 지난달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준법지원인제를) 의무화하는 데 대한 반대도 있으니 도입하되 자세한 건 시행령에서 정하자"고 정리됐고, 다음날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주무 부처인 법무부는 개정 상법이 공포된 후 공청회 및 전문가 회의를 통해 재계와 학계의 의견을 모아 올해 안에 대통령령으로 정할 계획이다.
법조계는 "상시적으로 법적 위험을 진단, 관리함으로써 불필요한 법률 비용을 줄이고, 윤리경영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며 제도 도입을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사외이사와 상근감사 등 각종 내부 통제 장치가 있는 마당에 준법지원인 제도까지 도입되면 결국 기업에 부담이 되는 '옥상옥'이 될 수밖에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 동안 정부와 한나라당은 준법지원인 제도 도입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거세자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 '대상 기업의 범위를 최소화 해 부담을 줄여 주겠다'는 등 시행을 미루거나 매출 2조원 이상 기업과 증시 상장 기업으로 그 대상을 제한할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는 제도시행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양 측의 입장을 들어 봤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준법지원인제 찬성
"법적 분쟁 위험 줄여 경쟁력 향상, 규제 아닌 경영 도우미로 큰 역할"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은 체계적인 준법관리시스템을 두고 있지 않아 기업의 존폐가 달린 법적 분쟁에 쉽게 노출되고, 분쟁이 발생한 후에야 이를 수습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최근 국회에서 상법개정안 통과로 추진을 눈 앞에 두게 된 준법지원인제도는 경제계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기업을 감시하고 규제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기업의 경영진을 적극 지원하기 위한 제도이다.
현대는 경영 환경과 기업 관련 법령이 복잡다기해지고, 소비자, 주주, 채권자, 근로자 등 이해관계인의 의식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이로 인해 기업은 다양한 법적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예컨대, 미국의 전체 반독점법위반 사건 중 20% 정도가 국내 기업에 관련되어 있으며, 자산규모 500억원 미만의 소규모 상장 회사들은 연간 160건에서 170건 사이의 소송에 휘말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은 체계적인 준법관리시스템을 두고 있지 않아 기업의 존폐가 달린 법적 분쟁에 쉽게 노출되고, 분쟁이 발생한 후에야 이를 수습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준법지원인제도는 이러한 관행을 타파해 수 많은 법률 위험을 시스템에 따라 사전에 예방하자는 것이다.
준법지원인의 역할은 크게 '시스템 구축', '교육', '모니터링', '위법행위 발견 및 시정'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각 기업의 고유한 특성을 잘 아는 법률전문가가 기업의 경영 활동 과정에서 예상되는 법적 위험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준법통제시스템을 구축한다.
또 임직원이 준법통제 기준을 잘 준수할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하며, 기업 내부에서 위법 행위가 발생하는지 여부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위법 행위가 발견된 경우 이를 조기에 고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먹구구식 경영이 아닌 시스템에 의한 기업 경영을 통해 기업의 안정성, 경쟁력 및 대외적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
준법통제시스템을 성실히 운영하는 기업은 분쟁의 여지를 사전에 차단해 불필요한 법률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만약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도 기업 및 경영진의 주의 의무를 다하였다는 점을 이유로 그 법적 책임을 감면 받을 수 있다. 미국의 연방양형지침에서는 기업의 위법행위에 대한 양형에 있어 준법통제시스템 운영 여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고, 일본, EU 국가들도 관련 법규 및 판례를 통해 준법통제시스템을 도입하도록 하고 이를 기업범죄에 대한 처벌기준으로 고려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은 준법지원인제도가 제도화된 지 이미 오래이며, 삼성증권,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같이 준법통제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기업은 생산성이 매우 높아진 반면, 법률 분쟁은 5건 미만에 불과하다. 준법지원시스템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한 삼성의 경우 자발적으로 올해부터 전 계열사에서 준법지원인제도를 실시할 예정이다.
물론,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이 약간의 추가 비용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기업의 이러한 노력을 보상할 수 있도록 기업의 위법행위에 대한 과징금규정, 양벌규정 등에서 혜택을 부여하고 형사처벌 시 양형 기준으로 적극 고려하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준법지원인 제도는 기업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때문에 무엇보다 준법지원인의 법률전문성, 독립성, 윤리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변호사가 준법지원인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는 정부 공공기관 기업 등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법률전문가를 배치시켜 법치주의의 저변을 넓히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도입된 로스쿨 제도의 취지와도 맞아 떨어진다.
김현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 준법지원인제 반대
"감사 등 준법경영 장치 이미 충분, 기업 입장 고려 안한 이중규제"
3월 11일 상장회사에 준법지원인을 두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통령령이 정하는 상장회사에 준법통제기준을 만들고 변호사, 법학교수 등을 준법지원인으로 1명 이상 둬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도입 취지를 보면 ‘대규모 기업에는 준법경영을 위한 제도가 미비해 윤리경영이 강화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 맞지 않으므로 준법지원인 제도를 도입해 기업의 준법 경영과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먼저 “대규모 기업에는 준법경영을 위한 제도가 미비하다”고 하는데, 실상이 그러한지는 따져볼 일이다. 이미 준법경영을 위한 여러 장치가 있는데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는 건 이중규제 성격이 짙다.
실제로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대기업은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해 경영진의 직무를 제3자적 관점에서 견제ㆍ감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인 소규모 기업도 ‘상근감사’를 둬야 하고 외부감사 대상기업은 신뢰할 수 있는 회계정보 공시를 위한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한 조사에서는 우리 대기업의 97.5%가 윤리경영 담당 부서를 두고 있다고 한다.
둘째, 준법지원인의 자격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한 점도 아쉽다. 준법지원인의 자격을 ‘변호사’와 ‘경력 5년 이상의 법학교수’로 명시하고 있다. 축구경기에서 심판이 선수까지 뽑아 경기를 시키는 격이다. ‘그 밖에 법률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으로 길은 열어 뒀다.
개정법에 따르면 준법지원인은 임직원의 직무수행이 법령에 맞고 회사경영을 적정하게 하는 지까지 점검해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준법지원인이 제대로 된 직무수행을 위해서는 법적 지식에 더해 회사의 업무 흐름과 경영 활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모든 법률전문가가 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셋째, 기업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제도가 의무조항으로 입법화된 것도 문제다. 내부통제는 경영 활동과 기업의 업무집행이 효율적으로 수행되도록 하는 기업의 자율적 판단영역이다.
넷째, 소규모 상장기업의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결산법인의 30%이상이 ‘영업활동현금흐름’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이자비용이 영업 이익을 초과하는 기업도 30%에 육박할 정도로 기업 사정이 좋지 않다. 영세한 상장 중소기업, 코스닥 기업 등이 준법지원인을 새로 고용해야 하는데 따른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주요국의 입법사례를 보더라도 준법지원인 제도를 의무적으로 도입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에 대한 일률적인 의무부과로 인해 또 다른 규제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지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법이 통과된 데 대해 아쉽다. 준법지원인 제도에 대한 재논의가 국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현실적으로 이것이 어렵다면 준법지원인을 고용해야 하는 대상 기업의 범위를 최대한 줄이고, 자격범위는 넓혀야 할 것이다. 준법지원인 제도를 강제할 것이 아니라 개별기업이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준법경영은 모든 기업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라는 것에 대해서 이론을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는 말에서처럼 법이 모든 것을 규율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명심했으면 좋겠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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