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발생 직후 보여줬던 일본인들의 의연한 태도와 달리 일본 정부의 대응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질서 정연하고, 침착한 이재민의 모습에서 선진국의 참모습을 봤다는 세계언론의 칭찬이 잇따랐지만 참는 게 아니라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구호 및 재해복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 보면 무능하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기자가 쓰나미 피해현장에 갔던 지난달 17일, 도호쿠 지역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다. 대지진과 쓰나미가 휩쓸고 간 지 1주일이나 됐는데도 말이다.
도로 등 기간망 복구는 지지부진했고, 대피소 피난민들은 '죽지 않을 정도'의 배급 식량 외에는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일본에 정통한 한국 센다이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고, 그마저도 우선 순위에서 원전 해결에서 밀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늑장 대처였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지진 발생 5일 만인 지난달 16일 주요 피해 지역의 지원을 위한 항구 복구와 수송 선박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어떤 곳에 어떤 물자를 보낼 지 결정하지 못해 각국에서 보내온 구호 식량 등은 항구에 쌓이기만 할 뿐 구호는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미 각 대피소에서는 열악한 환경에 견디지 못한 노약자 20여명이 사망하는 등 '2차 피해'가 심각했다.
센다이 지역의 한 대피소에 자사 덮밥을 무료로 제공한 업체 관계자는 "민간 구호품 역시 경찰의 긴급차량 허가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고속도로를 통해 피해 지역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이를 과도하게 매뉴얼화된 관료제의 폐해가 그대로 드러난 결과라고 지적했다. 매뉴얼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전 사고 직후 냉각을 위한 해수 투입이 필요하다는 해외 전문가들의 지적을 두고, 일본 정부는 우왕좌왕하다 2, 3일이나 지나 실행에 옮겼다.
또 현장에서 필요한 물품 하나 보급하기 위해서도 말단에서 의사결정자에까지 계통을 밟아가야 하는 수직 폐쇄적인 의사 결정구조도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재빠른 결단과 실행'이 필요한 위기대처 방식과는 동떨어진 시스템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무려 3주가 지난 이달 2일 재해현장과 사고원전을 찾았다. 도호쿠대학의 한 교수(문화학 전공)는 "창의력과 임기응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현 일본 지배 시스템의 맹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이는 곧 일본의, 일본 정부의 위기"라고 평가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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