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공릉동 옛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지에 남아 있는 트리가원자로 1호기(트리가마크Ⅱ)가 올해부터 해체에 들어간다. 1962년부터 30년 넘게 가동됐던 국내 첫 연구용원자로로다. 기념관을 만들어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다 안전을 고려해 해체가 결정됐다.
원전은 짓는 것보다 부수는 게 더 어렵다. 한국의 폐로(원자로 폐기) 경험은 1997년부터 3년간 진행한 트리가원자로 2호기(트리가마크Ⅲ)뿐이다. 78년 상용원전 운전을 시작했으니 원전 평균수명이 30~40년임을 감안하면 이젠 폐로를 적극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실제로 고리 1호기는 수명을 연장해 가동 중이고, 2013년이면 월성 1호기 수명이 끝난다. 하지만 한국은 폐로에 필요한 기술도, 돈도 아직 충분치 않다.
폐로가 결정되면 먼저 노심 속 핵연료를 3~5년 동안 식혀야 한다. 핵반응 위험이 없어지면 꺼내 구리 용기에 넣어 밀폐시킨다. 다음엔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시스템에 냉각수 대신 화학용액을 흘려 보내 콘크리트 구조물, 금속 배관이나 부품에 깊숙이 박혀 있는 방사성물질을 제거(제염)한다. 제염 후엔 로봇 절단기를 외부에서 원격 조종해 구조물과 부품들을 잘게 잘라 밀폐용기에 담는다. 폐기물이 담긴 용기들은 방사능폐기물처리장으로 옮겨진다.
트리가마크Ⅲ 폐로를 담당했던 정운수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주변 시설까지 전부 해체하는 데 총 5년, 192억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상용원전 하나 폐기하는 데는 적어도 10~25년이 걸린다. 핵연료다발(핵연료가 들어 있는 막대 뭉치) 하나 폐기하는 데만 4억1,000만원이 든다. 원자로 하나에 들어 있는 핵연료다발만도 100개가 훨씬 넘는다.
한국은 2009년 돼서야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폐로 비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009년 이후 사용후핵연료는 생길 때마다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정부에 처리 비용을 낸다. 지금까지 5,000억원이 모였다. 2008년까지 발생한 사용후핵연료 처리 비용은 한수원이 2014년부터 15년 동안 내게 돼 있다. 따라서 2014년부터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비용으로 연간 8,000억~1조원이 모일 전망이다.
사용후핵연료 이외의 구조물이나 부품 해체 비용은 원자로 하나당 3,800억~3,900억원일 것으로 한수원은 추산하고 있다. 해체에 10년이 걸린다고 치면 연간 약 400억원이다. 이 자금은 현재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조석진 한수원 원자력정책처 성장동력팀 차장은 "이 비용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비용처럼 별도로 적립해 두지 않아도 원전 운영 수익 등에서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한국 폐로 기술은 선진국의 60~80%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전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연구로는 일부 부품은 사람이 직접 해체할 수 있을 정도로 오염도가 낮지만 상용로는 사람 접근이 불가능하다. 문제권 원자력연 제염해체기술개발부장은 "폐로를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 기술로 하려면 실제 상용로와 똑같은 환경을 컴퓨터로 모사해 시뮬레이션을 해 봐야 한다"며 "시뮬레이션과 실증, 검증을 거쳐 완전한 국산 폐로 기술을 확보하려면 적어도 7, 8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은 안전을 위해 고가의 합금을 비롯한 아주 좋은 자재로 짓는다. 폐로 후 완벽히 제염된 자재는 재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해체된 트리가마크Ⅲ에서 나온 콘크리트 중 일부는 국내에서 도로를 깔 때 기초 자재로 쓰였다. 한수원 관계자는 "폐로 사업화 방안을 포함한 원전 해체 대책에 관한 정책 연구를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했다"며 "8월쯤 끝나면 구체적 방법과 전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