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발생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 직후 우리 정부는 "한반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부는 한반도 상공에 부는 편서풍으로 인해 일본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우리나라로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장담했다.
반면 프랑스, 러시아 등은 방사성 물질이 자국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 물질 제논이 우리나라에서 검출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의 후쿠시마의 방사능이 캄차카 반도, 북극을 거쳐 다시 시베리아를 관통해 남하해서 한국에 도착했다고 추정했다. 정부의 주장이 한 달도 안돼 180도 바뀐 셈이다.
정부는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뒷북 대응에 나섰다. 더구나 정부는 "방사능 물질의 양이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애써 해명했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말 바꾸기로 국민적 불안감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본 지진 이후 교민 안전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문제점을 보였다. 일본 원전 피해 대응을 위한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없어서 외교통상부, 국토해양부 등 관계 부처 간에 잡음만 흘러나왔고, 이 과정에서 현지 교민들의 불만은 확산됐다.
우리 정부의 외교력 부재도 드러났다. 일본이 지난 4일 방사성 물질 오염수 1만1,500톤을 바다에 방출하면서 우리 정부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음날 외교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 "왜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느냐"며 국제법상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항의했지만 결국 별다른 실익도 거두지 못했다.
이로 인해 기본적인 통보조차 하지 않은 일본 정부뿐 아니라 이를 넋 놓고 지켜보던 우리 정부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일본 지진 이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일 관계의 실상과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일본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해 전국민적인 모금 운동을 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지난달 30일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한층 강화한 중학교 사회ㆍ역사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를 강행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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