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ㆍ군 통합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1조는 개편의 목적으로 '지방의 역량 강화, 국가경쟁력 제고, 주민의 편의와 복리 증진'을 제시하고 있다. 지방의 역량 강화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주민 수와 면적을 확대해 규모의 경제와 역량의 집적을 필요로 한다. 반대로 주민의 편의와 복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근접정부를 통해 주민의 구체적 요구가 자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소규모여야 한다.
시ㆍ군통합 정말 잘됐다고 믿나
양자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지방자치의 중요한 목적이다. 선진국가들은 다계층의 자치정부를 통해 양자의 요구를 모두 실현하고 있다. 즉 광역지방자치단체는 지역과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역정부 모델을 채택하고, 기초지방자치단체는 풀뿌리자치로서 주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수요를 해결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특히 문제되는 것은 국가경쟁력과 지역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두 가지 개편방안이다. 하나는 시ㆍ군간 통합을 통해 기초지방정부의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시ㆍ도간 통합을 통해 광역지방정부를 확대하고 기초자치는 유지하는 방안이다. 전자를 소통합주의, 후자를 대통합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원래 정치권에서 주장한 도 폐지와 시ㆍ군 통합의 명분은 지역의 역량 강화이지만 본질은 전국의 16개 시ㆍ도를 60~70개의 통합 시ㆍ군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그대로 실천하면 종래의 광역자치정부인 도는 쪼개져 그 지역역량은 분산되고, 주민 근접정부로서의 기초자치는 실종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전형적인 소통합주의이다.
그동안 중앙정부와 정치권은 1995년 이래 줄곧 시ㆍ군 통합을 추진해왔다. 이를 추진하는 세력에게 물어보고 싶다. 1995년 이후 거의 80여 곳의 시와 군을 통합했는데 이로 인해 정말 잘 살게 된 곳이 있는지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다.
시ㆍ군 통합을 통해 주민 수가 60만~100만 정도 규모로 소통합을 이룬다 하더라도 지역적인 경제문제를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구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역의 큰 문제나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주민들의 구체적인 생활수요를 해결하는 데도 부적합하다. 즉, 소통합주의는 지역의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부적합하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부적합한 방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소통합주의적인 주장을 따르게 되면 광역자치도 포기하는 것이 될 것이고 기초자치도 실종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오늘날 세계화를 통해 지역간 경쟁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시대에는 인구 규모 500만 내지 2,000만~3,000만에 이르는 지역 단위로 개편하려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일본의 도ㆍ도ㆍ부ㆍ현 개편안이나 독일의 주 통합안이 이에 속한다. 경남에서는 부울경(부산-울산-경남) 통합론이 주장되고 있고, 전남에서도 한때 광주-전남의 통합을 추진한 적이 있다. 대통합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구와 경북, 충남과 대전, 경기와 인천의 통합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실현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부산ㆍ울산ㆍ경남과 대구ㆍ경북의 통합을 이룰 수 있다면 주민 수가 1,300만에 이루는 대지역으로서 경기나 서울에 맞먹는 규모로 무슨 사업이든지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전북과 전남, 광주의 통합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충남과 대전 충북의 통합도 지역경쟁력과 국가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국가 미래를 위한 중대 선택을
이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지역경쟁력을 강화하고 국가경쟁력을 제고함과 동시에 풀뿌리 지역공동체로서 근접 지방정부를 모두 살릴 수 있는 대통합주의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지역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풀뿌리자치도 죽이는 소통합주의를 따를 것인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한 번 선택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중대한 선택이다. 광범위한 국민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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