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기름값 산정 구조를 규명해내겠다며 의욕적으로 출범한 민관 합동 석유가격태스크포스(TF)가 별 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한 채 초라하게 활동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실망의 목소리는 의외로 크지 않다. 애초부터 예상했던 결과라는 평가가 우세하기 때문이다.
TF의 출범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월13일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물가 안정대책을 다루는 회의를 주재하면서 "기름값이 묘하다"는 말을 했다.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상황에서 기름값 역시 고공행진을 벌이자 기름가격이 적정한 수준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 실상은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하는 바람에 기름값이 필요 이상으로 높은 것 아니냐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가뜩이나 국민들 사이에서도 정유사들이 유가 상승기에는 가격을 '왕창'올리고 하락기에는 '찔끔' 내린다는 의심이 팽배해 있던 상황이었다. 정유사들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겼다는 사실도 이 같은 의심에 불을 지폈다.
정부는 빠르게 움직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유사들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은 민ㆍ관 합동으로 TF를 꾸려 조사에 착수했다. 직설화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목적이 정유사들의 폭리 구조 폭로에 있었다는 점은 명백했다. 하지만 3개월이나 걸린 조사 끝에 TF가 내놓은 결과물은 영 볼 품이 없다.
물론 수확은 있었다. 실제로 정유사들이 국제유가 상승기에 유가를 많이 올렸다가 하락기에 적게 내리는 이른바 가격 비대칭이 발생했던 사례들이 일부 포착됐다. 문제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폭리의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TF 관계자는 "기름값 산정 과정에는 각종 변수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반드시 정유사의 폭리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정유사들이 월말'밀어내기'를 통해 물량을 처분하려 할 때 발생하는 기름값 하락, 유가 상승기에 소비자들이 기름값이 낮은 곳을 골라 주유를 하는 행태 등 다양한 원인이 가격 비대칭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이다. '비대칭이 발생하는 시장은 문제가 있다'는 기본 전제부터 잘못됐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TF에 참가했던 윤원철 교수는 "애초부터 완벽한 대칭성을 지닌 시장은 그 어디에도 없으며 이상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정유업계뿐 아니라 다른 어떤 업계에 대해서도 동일한 조사를 하면 비슷한 정도의 비대칭성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윤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이 같은 전제는 정부와 청와대가 정유사들을 압박하기 위해 설정한 것"이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애초부터 정유사들의 폭리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TF를 운영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정유사들이 스스로 기름값을 내리도록 압박할 목적으로 정치적 용도의 TF를 운영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ℓ당 100원씩 내렸으니 정부의 의도는 100% 달성된 것"이라며 "하지만 기업들을 압박해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비난받을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들은"정부의 정책이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며 TF의 발표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힌 채 극도로 말을 아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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