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외형 확장 경쟁이 위태롭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조직 및 경영진 재편을 마무리한 터. 리딩뱅크 자리에 올라서기 위한 공격적 몸집 불리기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잖아도 저금리 상황에서 크게 불어난 대출 때문에 언제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 무리한 경쟁이 은행권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기업과 가계를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위험해도 대출 늘린다
6일 한국은행이 국내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출행태 조사에 따르면 2분기 대출태도지수는 21로 2002년 1분기(22)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았다. 대출태도지수가 높다는 것은 2분기에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겠다는 은행들이 많다는 의미. 은행들은 "대내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외형 확대를 위해 대출취급 조건을 대폭 완화하겠다"고 답했다. 이 지수는 2008~2009년에는 대부분 마이너스를 보이다가, 작년 1분기 플러스로 돌아선 이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 및 가계의 신용위험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는 게 은행들의 전망. 중소기업(6 →16) 대기업(-3 →0) 가계(9 →22) 등 모든 차주들의 신용위험지수가 전 분기보다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한은 관계자는 "대출금을 떼일 위험이 높아지는데도, 대출을 늘리겠다는 의미"라며 "자산확대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은행권의 대출 태도가 긴축에서 완화로 바뀌는 변곡점으로 판단된다"고 해석했다.
금도 넘어선 과당경쟁
실제 올 들어 은행들의 과당경쟁은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단순히 외형을 늘리는 것만이 아니라 경쟁 은행 고객을 빼앗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금융 감독당국의 감시망이 조여오자 쉬쉬하고 있지만, 일부 은행은 가계 대출이나 주택담보집단대출 등에서 다른 은행 대출을 당행 대출로 전환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너도나도 외형 확장하겠다고 덤벼들지만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은 제한적"이라며 "과도한 실적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는 타행 고객을 빼앗아오는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권 유치 경쟁이 치열한 퇴직연금 시장도 마찬가지. 한 은행은 지점의 경영성과평가(KPI)에서 '퇴직연금 유치' 점수의 가중치를 높게 부여하는 등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들도 기름을 붓고 있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지난달 하순 취임식에서 "영업을 잘해야 우대받고 승진하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했고, 김정태 하나은행장도 이달 초 조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고객 수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7일 국민은행을 시작으로 은행권 과당경쟁에 대해 강도 높은 종합검사를 벌일 예정.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두 분야에서 은행들이 과당 경쟁을 벌이면, 시장 질서가 무너져 곧바로 다른 분야로도 경쟁이 파급될 수밖에 없다"며 "사전에 선제적으로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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