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소. 환영하오. 앉으시오. 오늘은 날씨가 매우 좋구려.”
날씨는 좋지 않았다. 창 밖엔 잔뜩 구름이 끼어 햇볕 한 줌 없다. 실내 천장 형광등이 뿌옇게 주위를 밝혔다. 눈이 어두운데, 앞에서 검정색 선글라스를 낀 두 여성이 자꾸 ‘하오체’로 말을 건다. “도도함의 표현이오.” 하얀 분화장에 빨간색 립스틱이 도드라졌다. 지난달 1집 앨범 ‘미안하지만…이건 전설이 될 거야’를 발표한 2인 여성 그룹 미미시스터즈를 서울 서교동 붕가붕가레코드 사무실에서 만났다.
미미시스터즈는 2008년 결성 이후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안무와 코러스로 처음 얼굴을 알렸다. 일주일에 한 번 서울 광장시장에서 복고풍이면서도 화려하고 톡톡 튀는 옷들을 찾아 헤매고, 자신들의 모습에 식겁하는 인파를 홍해처럼 가르며 행진하고, 팬들이 말을 시켜도 웬만해선 입을 열지 않는다. 말하자면 ‘저렴한 신비주의’가 이들의 콘셉트다.
그렇다고 이들의 음악까지 저렴하지는 않다. 이 앨범에는 한국 대중음악의 거장인 신중현과 김창완을 비롯 크라잉넛, 서울전자음악단, 로다운30 등 내로라 하는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무대 뒷편에서 특유의 흐느적거리는 춤사위와 코러스만 보여주던 미미시스터즈는 어떤 음악을 하고 싶기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면상을 제치고 무대 앞으로 뛰어나온 걸까.
“1970년대 숙자매와 희자매, 바니걸스, 펄 시스터즈 등의 역사를 잇는 여성 그룹으로, 그 뭐랄까 록 속에 ‘뽕끼’가 살아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소.”
둘 중 키가 커서 ‘큰 미미’라는 여성이 당차게 말했다(신비주의 콘셉트 상 이름과 나이도 비밀이다). “70년대 시스터즈라 불린 언니들은 록과 밴드에 기반하면서도 멋들어진 여성 보컬로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다오. 댄스 하나에 치우친 요즘 아이돌 음악에 비하면 당시에는 낭만과 유머가 있었소.”
이번 앨범에 실린 곡 ‘우주여행’도 71년 ‘하필 그 사람’으로 데뷔한 고정숙, 재숙 쌍둥이자매 ‘바니걸스’가 부른 것을 리메이크했다. 작은 미미가 말을 이었다. “지난 2월에 연 단독콘서트에서는 숙자매의 ‘열 아홉이에요’, 펄 시스터즈의 ‘아저씨가 좋아요’를 카피해 불렀다오. 평소에 우리가 즐겨 듣는 음악도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같은 곡이오.” 이번 앨범에 60~70년대의 서핑사운드와 사이키델릭 같은 음악적 정서가 짙게 녹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큰 미미와 작은 미미가 처음 만나 음악으로 의기투합한 사연도 별나다. 10년 전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밤 서울의 한 막곱창 집. 갈 곳도, 만날 이도 없던 두 사람은 옆 테이블에 앉아 각자 술을 마시다 눈이 마주쳤고, “어?” 한마디로 통해 친해졌다. 그 때 서로의 일명 ‘록뽕삘’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7년 가까이 음악 언저리만 돌다 2008년 5월에 장기하를 만났다. 항간에는 장기하가 나이트클럽에서 춤추고 있는 이들을 보고 한 눈에 반해 삼고초려 끝에 ‘모시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노래를 잘 해서 기하씨가 찾았겠소. 뻔뻔한 사람들을 찾았던 것이오.” 큰 미미는 자랑 아닌 자랑으로 이 소문에 믿음을 주었다.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는 김창완 밴드의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그 역시 8년 전쯤 서울 홍대 앞 막곱창 집에서 술을 마시다 만났다. 일본인인 하세가와는 우연히 들은 신중현과 엽전들, 그리고 산울림의 음악에 끌려 한국음악에 빠져들었고 한국을 제 집 드나들듯 하다 눌러앉았다. 1995년 록밴드 곱창전골을 시작으로 황신혜 밴드, 뜨거운 감자 등을 거쳤다. 큰 미미는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요헤이와 만나고는 깜짝 놀라지 않았겠소. 웬 일본인이 한국음악에 대해 역사부터 의미까지 방언 터지듯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구려.”
앨범 제목 ‘미안하지만…이건 전설이 될거야’도 하세가와의 말 버릇에서 착안했다. “요헤이는 무슨 말을 꺼낼 때 ‘미안하지만…’이라고 먼저 말하는 버릇이 있다오. 안 미안해도 되는데 ‘미안하지만, 자장면 먹어도 돼?’라고 물어봐서 미치겠소.”(작은 미미) 전설이란 단어에선 자만심을 느끼기 쉽지만, 오히려 음악에 대한 이들의 겸손함이 담겨 있다. “우리 같은 풋내기가 앨범을 냈다는 것 자체가 기특하고, 신중현 선생님 같은 분이 앨범에 참여해준 데 대한 고마움 등을 수줍게 표현한 제목이라오.”(큰 미미)
무대에서 이 두 사람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짙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큰 미미, 작은 미미란 별칭과 달리 키도 엇비슷해 언뜻 봐선 누가 큰지 알 수 없는데다, 흐느적거리는 춤사위도 똑 닮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차이가 있단다. “술 몇 잔 먹고 무대에 올라간 것처럼 ‘경박한 카리스마’로 흐느적거리는 이는 작은 미미, 그나마 어느 정도 각지게 흐느적거리는 ‘정돈된 카리스마’가 큰 미미라오.”
이들은 앞으로 팬들을 무대에서 만나기 위해 공연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8일 서울 마포구 쌈지스페이스를 시작으로, 10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공연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끝으로 팬들에게 전하는 한마디를 부탁했다. “TV에 방송되는 간장 광고와 지하철에 걸려있는 모 대부업 광고에 자꾸 미미시스터즈가 나온다고 하는데 우리 이미지를 흉내 낸 남자들이오. 헷갈리지 마시구려. 직접 섭외하면 싼 값에 해주겠는데 말이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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