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친 등록금, 해도 너무해" 여대생들 삭발까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를 밉살스레 표현하는 이 말이 2011년 대학가 캠퍼스 광경을 빗대 회자되고 있다. 봄철 낭만이 흘러 넘쳐야 할 시기지만 지금 각 대학의 캠퍼스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미친 등록금'이라 불릴 정도로 살인적인 등록금 탓에 농성은 끊이지 않고 여대생들은 삭발까지 하며 등록금 투쟁에 나섰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개교 125년 만에 처음으로 채플 수강을 거부했다. 올해 2월 학자금 대출서류와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즉석복권 두 장을 유서 대신 남기고 자살한 대학생 얘기를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학생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는 통계도 충격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6년 191명이던 자살 대학생이 2007년 232명, 2008년 332명, 2009년 249명으로 증가했다. 2006년과 2008년 사이에는 무려 73%나 급증한 것이다.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대학생 6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0%(373명)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결과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방증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52.9%)은 '금전적 이유, 취업난'이라고 응답했을 정도다.
사립대의 한해 평균 등록금은 2000년 449만원에서 2010년 754만원으로 305만원(67.9%)이나 올랐지만 대학들은 스스로 부담을 지려하지 않고 여전히 손 쉬운 등록금 인상에만 매달리고 있다.
대학정보공개사이트 '대학알리미'에 공개된 서울 시내 사립대 10곳의 2009년 교비 회계 결산 내역에 따르면 6곳이 법정부담전입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부담전입금은 현행 사립학교법에 따라 학교 법인이 교직원의 후생복리를 위한 교직원용 연금, 의료보험료 등에 쓰기 위해 대학 측에 납입해야 한다.
홍익대 서강대 한국외대는 1억원 수준이었고, 동국대 명지대 숙명여대는 법정부담전입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대학들이 사학연금법의 '학교 경영자가 법정부담전입금 전액을 부담할 수 없을 때에는 부족액을 학교에서 부담할 수 있다'는 규정을 악용해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관계자는 "대학재단들이 법정부담전입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고 등록금으로 충당해도 법적 처벌은 물론 재정 지원 축소 등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학들은 그러나 "정부가 고등교육 재원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정부가 고등교육 재원에 투입하는 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1%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0.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지난해 10월 정부 재정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건의문을 냈다.
그러나 사립대 적립금이 7조원에 육박하는 현실은 외면한 '책임 떠 넘기기'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공개한 '전국 사립대 적립금 현황'자료에 따르면 2009년 결산 기준 전국 149개 4년제 사립대 누적 적립금은 총 6조9,493억원으로 집계됐다. 등록금넷 관계자는 "물가상승 등 등록금 인상의 필요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재단에 쌓아둔 적립금을 풀어 등록금을 낮추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명박 정부의 공약 사항인 '반값 등록금'(연간 등록금 약 350만원)이 실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등록금넷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대학예산에서 국가 지원금이 평균 70~80%를 차지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20%선에 불과하다는 것.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이수연 연구원은 "공교육 재정을 OECD 평균 수준인 최소 10조원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정부의 낭비성 예산을 고등교육 쪽으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등록금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단순 심의기구에 불과한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를 '등록금산정위원회'(등산위)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 등 21명은 지난달 15일 현재 등심위를 등산위로 변경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소속으로 등록금조정위원회도 설치할 필요가 있다"며 "등산위와 등록금조정위원회 회의록 공개를 의무화해 등록금 책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과도한 등록금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 등록금 못내리나, 안내리나
"학교 경영 책임지는 총장님이 등록금 결정해야지."
올해 초 고려대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 구성을 위해 학교와 학생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학교 측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당시 학교는 "농담"이라고 해명했지만 이후 등심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이 학교는 신입생에게 인상된 등록금 고지서를 발송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져 결과적으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게 됐다.
등록금이 봉?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사립대 110교 가운데 79교가 등록금을 인상했다.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 대학 등록금은 실제 어떻게 책정되고 있을까.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대학 알리미' 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4년제 일반대학 205개교는 등록금 책정 근거로 물가상승률(92.2%) 인건비 증감률(85.9%) 기타 운용비 증감률(84.9%) 타 대학 등록금 수준(83.4%) 주요 사업비 증감률(81.5%) 전년도 등록금 수준(81.0%) 등을 고려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예결산 안을 짜면서 수입의 부족분을 등록금 인상으로 채워 넣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요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은 높아지기만 한다. 올해 중앙대의 전체 수입은 약 3,329억원(등록금 회계 기준) 중 등록금이 2,514억원. 등록금 의존율이 71.4%로 지난해 58.8%(추가경정 예산 포함)에 비해 크게 올랐다. 서강대(54.5→68%) 한양대(63.4→75%) 숭실대(55→66%) 등도 같은 추세를 보였다. 이들 대학은 올해 등록금을 2.8~3% 올렸다.
반면 인상 근거가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 않다. 안 의원의 공개 자료에 따르면 한양대 한성대 등은 '법정부담금 증가' '토지매입' 등 법인에서 충당해야 할 비용을 등록금으로 전가했다. 중앙대 이화여대 등에서 '장학금 확충' '타 대학과의 등록금 격차' 등 불합리한 요인도 다수 발견됐다. 연덕원 연구원은 "수입은 축소하고 지출은 많게 해서 남은 돈을 적립하거나 이월하는 관행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책정 과정도 일방적… 식물 등심위
대학의 일방적인 등록금 산정을 막고, 학생들이 책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올해부터 도입된 등심위도 각 대학에서 파행을 겪었다. 개정된 고등교육법은 등심위 구성원 중 교직원 학생 외부전문가 중 어느 한쪽 비율이 50%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만 담고 있다.
상당수 대학들은 외부 전문가를 학교에 유리한 인사들로 채워 넣는 바람에 학생 측이 반발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대학 측이 제시한 등심위 위원 구성안을 거부했고, 서강대도 등심위를 3차례 열었음에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특히 서강대는 이런 상황에서 인상된 등록금 고지서를 학생들에게 통지, 학생대표들이 지난달 단식과 삭발로 항의하기도 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학생과 학생 측 추천 전문가가 2분의 1은 참여해야 수평적 협의가 가능할 것"이라며 "학교와 학생의 등심위 위원들에게 등록금 심의ㆍ산정에 필요한 각종 자료 제출권과 실질적인 의결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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