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쌓아두는 대기업]
어려운 대외 여건에도 불구, 지난 해 대기업의 성적표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돈을 잘 벌다 보니 대기업 곳간마다 현금이 수북이 쌓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기업의 비상(飛上)을 바라보는 시선은 별로 곱지 않다. 기업이 이윤을 확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박수 받을 일이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대ㆍ중소기업간 양극화 현실 속에 대기업들의 선전은 동반성장 역행논란을 낳고 있다. 현금은 쌓여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투자와 고용, 상생에는 얼마나 나서고 있느냐는 게 정부의 시선이다.
대기업,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적으로 불확실한 변수가 많았던 지난해, 매출과 순이익을 대폭 늘리며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시켰다. 매출 자산 순이익 부채비율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보였다.
5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보면,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 55곳의 평균 매출액은 22조6,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7.7%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전년보다 60.2%나 늘어 평균 1조4,9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현대차 그룹은 매출을 34조 4,000억원이나 늘렸으며, 삼성의 순이익은 21조6,000억원이 늘었다.
장사가 잘 되다 보니 부채비율도 100%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올해 공정위가 집계한 대기업 집단의 평균 부채비율은 109.0%로 전년보다 6.8% 포인트 개선됐다. 특히 부채비율이 560%에 이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포함된 공기업군을 빼면, 민간기업의 부채비율은 100% 이하(94.6%)로 떨어진다. 빚이 자본보다 적은 초우량 재무구조를 실현한 셈이다.
최고실적, 더 이상 좋은 일만 아니다
이익을 많이 내다보니 기업마다 현금이 쌓여가고 있다. 한국거래소와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10대 그룹(자산기준) 상장 계열사들의 작년 말 기준 유보율은 1,219.45%. 전년보다 96.54%포인트나 높아졌다. 자본금 대비 잉여금비율을 나타내는 유보율이 높다는 것은 벌어들인 현금을 쓰지 않고 많이 쌓아놓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대기업에 대한 시선이 갈수록 고까워진다는 점. 서민 중소기업 체감경기가 냉랭한 상황에서 대기업들의 독주는 그 자체 갈등의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선 투자. 유보율이 높다는 것은 대기업들이 번 돈을 투자하지 않고 쌓아놓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 관계자는 "높은 유보율은 재무구조가 건전해진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론 투자하지 않고 돈을 놀리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며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자본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좀 더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도 마찬가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수는 2,382만 9,000명으로 전년보다 32만 3,000명 늘었지만, 대기업 취업자로 분류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취업자는 되레 감소했다. 재계가 틈이 날 때마다 고용을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삼성 현대차 등 초대형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대기업들의 채용문턱은 갈수록 비좁아지는 현실이다.
상생ㆍ동반성장도 같은 맥락. 상생협력을 위한 일부 진전에도 불구, 중소기업 및 협력업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당장 중소기업계에선 "저렇게 현금을 많이 쌓아두고서도 어떻게 협력업체에 대해선 그토록 인색할 수 있나"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대기업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동반성장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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