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형제가 60년 만에 다시 만났다. 형을 따라 전장에 나섰던 동생은 형이 잠들어 있는 곳에 나란히 묻혀 비로소 영면에 들었다.
경북 청도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4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고 이천우 이등중사(현재의 병장)는 전쟁 발발 4개월째인 1950년 9월22일 19살의 나이에 자원 입대했다. 세 살 터울인 형 이만우 하사(현재의 상병)가 불과 한 달 전 입대했던 터라 홀어머니는 극구 만류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군7사단 소속이었던 이 이등중사는 서울 수복에 이어 평양탈환작전과 개천ㆍ덕천전투, 하진부리전투 등 북진 대열에 잇따라 투입됐다. 형도 다부동 반격작전과 서울 수복, 평양 탈환, 운산 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이 이등중사는 치열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1사단에 배치된 형을 끝내 만날 수 없었다. 당시 전우들에 따르면 그는 "형은 무사한 지 몹시 궁금하다. 평양 탈환 전투 때 먼저 1사단이 입성했다는 소식에 행여 형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했었는데…"라며 무척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이 이등중사는 51년 9월25일 강원 양구군 백석산 고지탈환을 눈앞에 두고 산 능선에서 전사했다. 형은 그보다 4개월 앞서 경기 고양의 봉일천 전투에서 전사했다. 두 형제가 전장에서 이동한 거리는 3,400㎞에 달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형제의 생사를 알지 못했다. 형과 동생은 각각 54년 6월과 9월에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형의 유해가 먼저 발견돼 60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지만 가족들은 이마저도 까맣게 몰랐다. 애타게 형제를 기다리던 홀어머니는 85년 세상을 떠났다.
국방부가 지난해 10월 백석산 부근에서 동생의 유해와 인식표를 발굴하면서 형제의 애틋한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국방부는 인식표에 적힌 군번의 병적 조회와 유해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동생의 신원을 확인했고 가족내력을 조사하던 중 형도 참전했던 사실을 추가로 알게 됐다.
국방부는 형제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동생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형의 묘역 옆에 안장하기로 했다. 서울현충원에 부부를 제외한 혈육이 함께 안장된 것은 2007년 서해 야간비행 중 순직한 고 박인철 대위가 84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 순직한 아버지 고 박명렬 소령 옆에 함께 묻힌 이래 두 번째다.
유족인 큰 조카 이명덕(61)씨는 5일 부산 자택을 찾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부터 신원확인통지서와 위로패, 유품 등을 건네 받은 뒤 "두 아들을 전장에 보내고 시신마저 찾지 못해 눈물로 지내셨던 할머니의 한숨 소리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며 "두 분의 삼촌을 동시에 찾게 돼 그간 맺혔던 집안의 한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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