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2012년 재선 도전 선언으로 미 대선 정국이 본격 점화했다. 선거를 20개월 앞두고 나온 오바마의 재선 출사표는 지난 대선 때 출마 선언(2007년 1월)보다는 3개월여 늦은 것이지만, 공화당에서는 누구도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기 출마'의 성격이 짙다. 오바마가 민주, 공화 양당의 첫 대선 주자로 나선 것에는 선제적인 조직 정비와 선거자금 모금으로 공화당을 압도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지난 대선 때 풀뿌리 소액 기부운동으로 7억5,000만달러를 모았던 오바마는 이번에는 대선 사상 처음으로 10억달러 이상 모금을 목표로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 일찌감치 캠페인 본부를 가동시켰다.
오바마가 선거전에 가장 먼저 뛰어든 것은 재선가도의 환경이 지난 대선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위기의식에서다. 무엇보다 2년여의 재임기간 동안 진보세력의 이탈로 지지기반이 상당히 느슨해졌다. 대선 승리 일등공신이었던 아프리칸과 히스패닉, 젊은층과 고학력 백인층 유권자들이 오바마의 탈색된 현실정치에 실망, 확연히 이탈한 것.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 끝나지 않는 이라크ㆍ아프간 전쟁, 재정위기, 파당 정치 등 전임 행정부의 실정으로 손쉽게 백악관에 입성했던 지난 대선 때와 달리 지금은 모든 것이 오바마의 실정으로 거듭 나고 있다. 그래서 조기 선거캠프 가동은 이번에도 당락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들을 다시 흡수해 풀뿌리 조직을 보강하겠다는 뜻이다. 출마 비디오 영상물에서 자신 대신 중년의 백인 남성, 히스패닉 여성, 백인 여성, 아프리카계 여성 등 인종과 지역, 나이에서 다양한 5명의 유권자를 등장시킨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오바마 재선의 관건으로는 경제와 안보가 꼽힌다. 여전히 9%에 육박하는 실업률, 1조5,000억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재정적자, 끊이지 않는 주택압류 사태 등 경제위기가 남은 20개월 동안 계속되면 현직대통령 프리미엄에도 불구, 재선은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중동정정 불안과 리비아 군사개입은 이라크ㆍ아프간 전쟁에 염증을 내고 있는 유권자들의 안보불안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공화당은 아직 '정중동'
공화당 잠룡들은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몸사리기 전략'을 펴고 있다.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 등 10여명이 거론되지만 누가 유력하다고 점치기는 이르다.
뉴욕타임스는 공화당 전략으로 '슬로 스타트'와 '경선 장기화'를 꼽았다. 1996년 대선 때 밥 돌 상원의원은 20개월 전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하고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과 합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의 예산안을 맹공했다. 그러나 연방정부 폐쇄라는 초유의 사태가 터지면서 그 책임이 고스란히 공화당에 돌아가 공화당은 대선에서 힘없이 완패했다. 잠룡들이 서로 나서봐야 득될 게 없다고 보는 것은 이런 경험 때문이다. 경선 장기화는 지난 대선 때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의 민주당 경선을 벤치마킹 했다. 당시 민주당은 장기화한 경선 흥행에 성공하면서 대선까지 승리를 거머쥐었다. 공화당은 내년 경선부터 승자가 주(州) 대의원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 방식이 아닌 득표율에 따른 대의원 분배방식의 채택을 검토중이다. 후보가 일찌감치 결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