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지난 주말에 가져온 재고가 아직 절반도 안 나갔는데 무작정 값을 내릴 수는 없고, 손님들은 왜 안 내리느냐고 성화고. 할 수 없이 100원 내리긴 했는데, 우리만 나쁜 사람 될 판입니다."
7일 서울 외곽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기자에게 답답함을 호소했다.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는 공급 가격을, SK에너지는 현장 결제 금액에서 인하하는 방식으로 이날 0시부터 휘발유와 경유의 주유소 공급가격을 ℓ당 100원씩 할인했다. 하지만 현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주유소 마다 "왜 가격을 안 내리느냐"고 항의하는 소비자들과 "손해를 보면서 내릴 수 없다"는 종업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이어졌다. 회사원 B(44)씨는 "가격을 내린다기에 일부러 며칠을 기다렸는데 허탈하다"며 "이럴 거면서 왜 정유사들이 생색을 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주유소 업주들은 "우리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한국주유소협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정유사들의 일방적 가격 인하 때문에 주유소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보통 주유소들은 주말, 특히 제품 가격이 싼 월말에 제품을 가져와 2주~1개월까지 보관하며 판매 한다.
주유소 업주 A씨도 마찬가지다. 지난 주말 휘발유 300드럼, 경유 100드럼을 가져온 그는 "한 번 물건을 가져오면 2주 정도 파는데 100원씩 내리기 전 가격으로 가져온 제품을, 100원씩 깎고 팔라니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보통 ℓ당 판매 이익이 60~120원 정도인 것으로 감안하면 100원 인하는 결국 손해라는 주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주유소 업주들은 이날 판매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한국일보가 경기 일산 자유로 장항 나들목(IC) 도로 양쪽에 있는 주유소 8곳에서 파는 휘발유와 경유 값을 6일 오후 11시30분과 7일 오전 10시에 직접 확인한 결과 ℓ당 100원씩 내린 곳은 1곳 뿐이었다. 다른 2곳은 휘발유 기준으로 ℓ당 89원과 40원씩 내렸고 나머지 5곳은 아예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주유소 관계자들은 정부에 대한 성토도 빼놓지 않았다. 서울 시내 한 주유소 업주는 "정부의 태스크포스(TF) 발표 결과를 본 뒤 주유소 업주들이 '정유사들이 뭔가 꽁꽁 숨기고 있다고 의심했다가 이제는 오히려 정유사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는 말까지 한다"며 "정유사만 달달 볶을 게 아니라 정부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주유소측 주장에 대해 "역시 이기적인 행태"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주부 C씨는 "주유소는 유가가 오를 경우 싸게 사둔 재고품을 비싸게 팔아 이익을 챙기지 않느냐"며 "그 때는 아무 말 않다가 정유사가 기름값을 내리니 재고 때문에 가격 인하를 못하겠다는 것은 얌체같은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유류세 인하를) 여러 방향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세금을 조정하는 것이 그만큼 유가 인하에 도움이 되는지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며 "시기와 속도, 국제 유가 동향 등 모든 변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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