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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6> 김지미의 '사랑이 가기 전에'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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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의 액션영화에 바친 60년] <6> 김지미의 '사랑이 가기 전에' (1959)

입력
2011.04.0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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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금봉 대신 김지미로 가자" 팜므파탈로 태어난 최초의 장희빈 '사랑이 가기 전에' 촬영 중 김지미 얼굴 부상日성형외과서 재수술 받는 등 천신만고 끝 완성'장희빈' 여주인공 섭외 난항 때 김지미 떠올라

김지미의 '사랑이 가기 전에' (1959)부터 최초의 팜므파탈 '장희빈' (1961)까지

명동 모나리자 다방은 전후 상실감과 절망에 빠진 문학·예술인의 도피처였다.(후에 모나리자 다방은 단순 고유명사가 아니라 이런 전후의 분위기를 껴안으며 도피처를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된다.)

김동리 작가, 조병화 시인, 박인환 시인 등 당대의 작가들, 시대의 전위에서 국가의 미래를 토론하는 지식인들, 여러 예술인들이 모나니자 다방에서 매일 모여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영화인들 역시 그 모나리자 다방에 모여 공존하고 있었다. 모두가 궁핍한 시절, 낮에는 다방에서 커피 한 잔에 마음을 적시고 저녁때만 되면 없는 주머니 털어 술로 위로를 삼으며 하루하루 암울한 현실을 견뎌내던 시절이었다.

모나리자 다방에서 동고동락하던 조병화 시인의 동명 시로 김지미 주연 '사랑이 가기 전에'(1959)를 만들게 된 인연도 그렇게 시작됐다. 때론 퇴폐적 낭만주의에 젖어 커피와 술만 죽이던 모나리자 다방시절 조차도 지나고 보니 고향처럼 아련하고 따뜻한 향수가 되었다.

조병화 시인의 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1955ㆍ정음사 발행)는 당시 시집으로는 최초라고 할 수 있으리만큼 대단한 대중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국내 출판계에 연시 형식 시집의 베스트셀러 진입 전통을 세운 시대의 히트작이다.

동명의 시를 주제로 만든 영화 '사랑이 가기 전에'는 김지미 황해 문정숙 김동원 한은진이 출연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로 시를 타이틀로 한 영화로 평가되며 '신선한 감각과 새로운 모럴'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작곡가 박춘석이 영화음악을 맡았고 김지미와 문정숙의 신선한 연기가 돋보였다.

황해가 제3한강교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그 당시에는 노량진과 서울 시내를 왕래하는 전차가 있었다. 테스트 때는 별 일 없이 잘 됐는데 촬영에 들어가자 오토바이를 탔던 황해가 과속을 하게 됐고, 오토바이가 전차 레일에 걸려 넘어지면서 뒷좌석에 탄 김지미가 얼굴을 아스팔트에 깔고 한 15m 이상 미끄러졌다. 중상이었다. 뛰어 들어가서 안고 보니 얼굴하고 코가 완전히 없다시피 끔찍한 부상을 당했던 것이다. 아스팔트에 얼굴을 밀고 갔으니 피부가 파열 될 때로 파열됐다.

김지미를 안고 차에 올라 을지로 6가 병원으로 달렸다. 그 때 상황으로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지금처럼 성형수술이 발달돼있을 때도 아니었다. 도저히 여배우로 다시 생명을 이어가기는 힘들 거라 생각했다.

응급실에서 다섯 시간 이상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입원실에서 보니 숨만 쉴 수 있을 정도로 붕대를 칭칭 감아 놓았더랬다. 수술한 담당 의사한테 물었다. "좀 어떻습니까?" 했더니,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다"고 답했다. 천만 다행이었다. 의사는 "수술을 여러 번 해야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당시 아마 3개월 정도 입원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동안 몇 번 수술 하고 나서 한국에서는 온전히 제 얼굴로 돌리기가 힘들어 일본으로 건너 갔다. 일본 유명 성형외과 병원에서 재수술을 받고 돌아와 천신만고 끝에 '사랑이 가기 전에'를 완성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당시 영화인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무모할 정도로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김지미와는 인간적으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비록 사고라 할지라도 그 상황에 대해 원망도 했겠지만 작품을 위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적으로는 친구 홍성기 감독의 부인이기도 했으니, 나 역시 촬영을 중단하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그를 극진히 돌봤다. 지금도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김지미와 만나면 열정 가득했던 옛날 그 시절 얘기를 하곤 한다.

그 때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김지미와는 '장희빈'(1961)에서 다시 호흡을 맞췄고 결과는 기대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장희빈'은 화성영화사에서 감독을 의뢰했었는데 스카라극장에서 추석 개봉 예정으로 이미 날짜가 확정된 상태였다. 촬영기간이 얼마 없었는데 여주인공을 도금봉으로 해서 장희빈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작자 쪽에서 요구를 했다. 도금봉은 당시 신상옥 감독 전속이었다. 신 감독을 찾아가 "도금봉을 장희빈 역할을 좀 시켰으면 좋겠다. 그러니 좀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신 감독이 거절했다. "현재 하고 있는 작품이 없으면 빌려 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도금봉도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신 감독은 말했다. 추석 개봉에 맞춰야 하니 마음은 바쁜데, 제작자가 요구하는 주인공을 캐스팅할 수 없어 난감했다.

여러모로 고심하다가 여주인공에 대해 달리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 기회에 제작자가 바라던 단幣?요부 이미지의 장희빈을 버리고, 장희빈의 이미지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른바 '팜므파탈'(Femme-Fatal)의 이미지였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라 정의되는 영화 속 여성 이미지다. 즉 아름답지만 운명적으로 악할 수 밖에 없어서 미워할 수 없는 이미지 말이다. 그 때 김지미가 떠올랐다.

팜므파탈 이미지를 위해서는 '도금봉 보다는 차라리 김지미가 나을 거다'는 생각을 하고 회사 측에 얘기를 했다. "도금봉이는 도저히 안 되니까 차라리 김지미를 장희빈 역할로 하자. 그 역으로 가는 게 오히려 더 효과가 있을 거다." 설득은 통했고 마침내 김지미 주연의 '장희빈' 촬영에 들어갔다. 이때는 이미 촬영기간이 딱 한 달 밖에 남지 않아 밤낮으로 촬영해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김진규 조미령 김승호 최남현 허장강 장동휘 황해 윤인자 남미리 정애란 등 당대의 명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비원에서 날밤을 새우며 개봉날짜를 맞추느라 고군분투 했다. 정애란이 어머니 역할, 장동휘가 오빠 장희재, 조미령이 중전, 김승호는 중전을 옹호하던 가신 역할을 했다.

김승호와 황해가 유배 가는 장면을 반포동과 동작동 갈대밭에서 촬영했다. 그 당시 반포동과 동작동은 온통 갈대밭이었고 집 한 채 없던 황무지였다. 갈대밭에 트럭을 몇 번 왔다 갔다 하게 해서 길을 만들었다. 갈대밭 가운데 고목이 하나 덩그러니 서 있었는데, 유배 가는 사람에 대한 분위기를 묘사하기에 아주 절묘하게 들어맞는 자연스런 소품이었다.

갈대를 끼고 고목이 서 있는 '미장센'(mise-en-sceneㆍ영화 화면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의 배치)만으로도 흡족한데, 동가홍상(同價紅裳ㆍ이왕이면 다홍치마) 격으로 때마침 처연한 구슬 비에 천둥번개까지 치는 것이었다. 찰나의 우연성이 최적의 상황으로 연출되고 있었다.

촬영 중 번개가 치니 김승호가 겁을 내고 주춤거렸다. "뒤돌아보지도 말고 그냥 천둥 치면 하늘만 쳐다봐라. 원망하듯이!"하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동시녹음이 아니었으니까 소리 질러 연기를 속계 시키던 중 마침내 벼락이 고목을 쳤다. 우연찮게도 화룡점정(畵龍點睛)까지 하늘로부터 선물로 받게 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고목이 벼락에 맞고 나무가 꺾이는 장면에서 그만 김승호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짜 맞추듯 절묘할 수 있었던 장면을 그만 놓쳐 버린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냥 주저앉아 버리다니…. 결국 그 아름답고 의미심장한 장면은 못 쓰게 돼 버렸다. 그 장면은 지금 돌아봐도 정말 아까운 장면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무사히 '장희빈'이 추석에 맞춰 개봉하게 되었다. 이후 숱하게 영화와 드라마로 나오게 되는 그 많은 장희빈 중 최초의 장희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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