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만 해도 서울 거리에는 고아와 노숙인이 넘쳐났습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은 엄청난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4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태화복지재단 90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 방한한 페기 빌링스(82) 전 태화사회복지관장은 이날 "한국인들이 자랑스럽다"고 연신 강조했다.
빌링스 여사는 1954년 스물 다섯 나이에 한국사회복지관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태화사회복지관을 맡았다. 선교사 매미 마이어스(한국명 마의수)가 1921년 태화여자관으로 시작한 태화복지재단은 지난 90년 동안 전국 각지에 복지관을 비롯해 42개 복지시설을 설립해 소외계층에 돌봄의 손길을 내밀어 왔다.
그는 1963까지 10년간 복지관장으로 있으면서 소외계층을 위해 야학을 개설하고,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일터로 나서야 했던 여성들에게 직업상담소를 열었다. 또 전쟁으로 불구가 된 이들과 병원을 연계하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전쟁 막바지인 1953년 1월 한국에 왔습니다. 다행히 태화복지관은 폭격을 피했지만 복구가 급했고, 미군 점령하에 있던 복지관도 되찾아와야 했죠. 프로그램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죠." 그는 "우리가 지금과 같은 한국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복지의 기반을 다지고 사회 발전에 일부 도움을 줬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변영숙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받은 빌링스 전 관장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관련 현안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간 북미한국인권문제연합회장을 맡아 미국과 캐나다인들에게 한국의 상황을 꾸준히 알리기도 했다. 그는 "정부가 옳지 못한 결정을 내리면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밝혔다. 20일 출국하는 빌링스 여사는 "어려운 시기에 한국에 와서 나도 많이 배웠다"며 "마음속으로 항상 한국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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