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단 둘이 이끌어가는 '안티크라이스트'는 단출한 구성과 달리 파격과 충격으로 107분을 이어간다. 뭐 별일이냐는 듯 스크린을 장식하는 남녀 성기는 그나마 양반이다. 피가 섞인 정액이 남성 성기에서 분출되거나, 가위로 여자의 성기를 훼손하는 장면이 아무런 여과 없이 화면을 채운다. 사람의 다리에 구멍을 내고 그곳에 바벨 원판을 부착하는 모습에선 눈을 질끈 감고 싶다. 여느 영화 같으면 에둘러 표현할 장면에서 카메라는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파격과 충격이란 말로 충분한가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영화는 지극히 논쟁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감독이 라스 폰 트리에다. '백치들'(1998)과 '어둠 속의 댄서'(2000), '도그빌'(2003) 등을 만든 덴마크의 문제적 감독이다.
쾌락과 비극을 극명하게 대조시키며 영화는 시작한다. 그(윌렘 데포)와 그녀(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샤워를 하며 관계를 맺는 모습과, 그 와중에 벌어진 그와 그녀 아이의 추락사 장면을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흐르는 가운데 병치시킨다. 부모, 특히 그녀의 죄책감을 그렇게 극대화시키며 영화는 혼돈과 광기 속으로 진입한다.
적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제목, 그와 그녀가 에덴이라는 숲에서 파국을 맞이한다는 내용, '자연은 사탄의 교회다'라는 대사, 마녀 사냥 등 기독교적 이미지가 줄곧 사용되지만 딱히 종교영화라 할 수 없다. 감독은 인간 본성에 담긴 악마성을 탐미적이고 실험적인 영상을 통해 집중적으로 탐색한다.
2009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첫 소개됐을 때도 갖은 화제를 뿌리며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영화 마지막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문구는 실소를 부르기도 했다. '희생' '향수' 등을 만든 타르코프스키(1932~1986)는 영상시인으로 불리는 러시아 감독이다.
칸영화제 상영 뒤 "예술을 가장한 지적 사기"라는 혹독한 비판이 따랐고, 폰 트리에는 기자회견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는 말로 혹평을 일축했다. 그는 "나는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을 생각하지 않는다. 내 자신만을 위해 영화를 만들 뿐"이라고도 말했다. 영화를 공개하기 전 "2년 전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갱스부르는 이 영화로 칸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다. 수작이라는데 동의할 수 없지만 몸을 던진 그의 연기는 박수 받을 만하다. 수입사가 주장하는 이 영화의 장르는 '사이코 스릴러 드라마'. 적어도 드라마라는 단어는 빼야 할 듯하다. 여성 성기 훼손 장면이 삭제된 채 14일 개봉한다.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