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 청소년 음악 치유 '유유자적 살롱'일주일에 이틀 악기 연습… 악보·진도 없이 "그냥 논다"지난해 1기생 10명 배출 밴드 결성·대학 진학 등 세상에 한발짝씩 다가서
열일곱 살 A군에게 처음 가는 낯선 곳은 어디든 '무서운 곳'이었다.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중학교를 자퇴한 후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식구들과의 다툼도 심해져 가족 전체가 1년 넘게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해 3월, A군의 표현을 빌리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두려움과 경계심을 품고 그는 어느 무서운 곳을 찾았다.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 차츰 마음을 열게 된 그 무서운 곳의 강사에게 기타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A군은 시나브로 달라졌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또래들과 청소년밴드를 만들어 리더를 맡았고, 현재 자작곡을 담은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더 이상 은둔하지도 않고, 외톨이도 아니다.
그가 찾아간 무서운 곳은 서울 영등포구의 '유유자적 살롱'(유자 살롱)이었다. 유자 살롱은 음악을 통해 외롭고 힘든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되찾아 주겠다는 사회적 기업이다. 인디밴드 멤버, 작곡가 등 음악인 4명이 교육을 맡고, 디자인 담당 1명, 대외협력 담당 1명까지 6명의 직원이 일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유유자적하며 살자는 게 이들의 모토다.
유자 살롱의 핵심사업은 학교나 사회와 단절된 채 방에서 나오지 않는 청소년들을 음악 교육으로 치유하는 '유유자적 프로젝트'다. 지난해 9~12월 10명의 1기생을 배출했다.
덥수룩한 머리가 어깨까지 닿고 손발톱도 길게 자란 채 방치됐던 아이, 바깥에 나온 지 오래돼 교통카드 사용법조차 몰랐던 아이도 있었다. 3개월 과정만으로는 역부족이었는지 다시 자신만의 공간인 방으로 돌아간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학 진학이나 검정고시, 2월에 시작된 2기 과정 참여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다.
유자 살롱은 어떻게 단절된 방과 세상을 이어주는 걸까. 공동대표인 전일주(29) 이충한(34)씨는 "그냥 논다"고 했다. 일주일에 이틀 아이들에게 기타 리코더 등의 악기를 가르치는데 악보나 진도는 없다. 아이가 기타로 쉬운 곡을 치면 강사도 각자 드럼 등을 같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식이다.
오랫동안 집안에만 있었던 아이들인 만큼 서서히 적응할 수 있도록 처음 3주 동안은 아이와 1대 1 수업만 한다. 이후 아이들을 모아 합주 연습을 하고 과정이 끝날 때는 가족과 지인들을 불러 작은 공연을 연다.
특별활동도 하지만 밥 먹기 산책하기 농구하기 영화보기 등 도통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전씨는 "은둔하는 아이들에게는 일상적인 것들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일상활동이 여러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음악 역시 아이들을 세상으로 불러내는 수단이다.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과 즐겁게 소통하고 노는 법을 익히고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자 살롱이 만든 '두줄 기타'는 기타 여섯 줄 중 네 줄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부직포를 붙여 초보자도 10분만 배우면 한 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 없어 쭈뼛쭈뼛 하던 아이들도 금세 성취감을 맛본다.
사실 이씨와 전씨는 '배고픈' 음악인으로서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고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유자 살롱을 만들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출신인 둘은 각각 대안학교 교사(전씨), 삼성카드 직원(이씨)이었지만 음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이씨는 드라마 '연개소문',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등에서 작곡과 편곡을 했다.
자신들이 겪은 10대의 기억은 유자 살롱의 밑바탕이 됐다. 전씨는 "모범생처럼 보였지만 결핍과 공허가 가득한 허허벌판", 이씨는 "고교 졸업 때까지 친구가 2명밖에 없을 정도로 힘들어 3일은 우울하고 4일은 그럭저럭 버틴 삼한사온"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음이 다친 10대들의 결핍을 채워주고 싶었단다.
유자 살롱 후원자들의 마음도 비슷하다. 가수 서태지의 팬 130여명으로 구성된 기부모임 '매니아 기빙써클'은 유자 살롱이 사회적 기업으로 탄생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줬다. 자신들이 10대 때 서태지의 음악으로 위안 받았듯 지금 힘들어하는 10대들 역시 음악 속에서 치유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을 맺은 것이다.
전씨의 메시지는 확고하다. "무기력에 파묻힌 아이들이 자라 최빈곤층으로 내려앉기 전에 세상으로 불러내야 합니다. 음악이 그들을 부를 겁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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