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방사선에 피폭됐다면 그 피해가 자녀에게까지 대물림될까. 방사선에 대한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까진 어느 과학자도 이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실제 피폭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와 동물에게 방사선을 쪼여 실험한 결과는 희한하게도 정반대의 결과를 보인다.
역학조사선 NO, 동물실험선 YES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우라늄과 플루토늄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9만여 명이 숨지고 18만여 명이 다쳤다. 그때 생존한 사람들은 폭탄에서 방출된 다량의 방사성물질이 내는 방사선에 피폭됐다.
일본은 당시 피폭자 9만 명의 2세들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했다. 그 결과 유산이나 사산 건수, 유전병, 백혈병, 유아사망률 등에서 방사선 피폭자 2세들과 피폭되지 않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2세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방사선을 일정 농도 이상 맞은 피폭 당사자들에게선 암 발생이 늘었다는 보고가 나왔다.
그러나 미국 과학자들이 지난 2002년 내놓은 동물실험 결과는 전혀 다르다. 방사선을 쪼인 수컷 쥐를 정상 암컷과 교배시켜 태어난 2세대뿐 아니라 3세대의 쥐에서 모두 정상 부모에게서 태어난 쥐보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많이 생겼다. 당시 연구팀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실제 질병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방사선의 피해가 유전된다는 게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셈이다. 한국원자력의학원 관계자는 "역학조사와 동물실험의 차이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며 "역학조사는 생명체 전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주목하는 반면, 동물실험은 유전자나 세포 수준에서 생물학적인 변형이 일어났는지를 본다"고 설명했다. 피폭자 2세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없었다고 해도 실제 유전자나 세포는 일부가 손상된 상태일지 모를 일이다. 반대로 일부 유전자나 세포가 방사선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항상 질병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몸 밖에선 30년, 안에선 110일
방사선에 쪼였을 때 인체가 얼마나 영향을 받을지는 명확히 단정짓기 어렵다. 사람마다 방사선에 견딜 수 있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행해도 누구는 바이러스를 비웃듯 멀쩡하고 누구는 내내 감기를 달고 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방사선을 맞은 부위가 어디냐에 따라 영향이 다르다. 우리 몸에서 방사선에 가장 민감한 부분은 눈의 수정체다. 한번에 50센티그레이(cGy, 1cGy=10밀리시버트) 넘게 받으면 반드시 백내장이 생긴다. 일반인의 연간 선량한도는 1밀리시버트다. 골수와 생식기관도 민감한 편이다. 윤세철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한번에 100cGy의 방사선을 골수에 받으면 3~4주 뒤 백혈구 생성이 급격히 줄고 빈혈이 나타나며, 200cGy 이상을 한번에 받으면 영구불임이 된다"고 설명했다. 가장 방사선에 잘 견디는 부위는 피부와 갑상선이다. 피부에 물집이 생기고 헐려면 2,500cGy가 넘는 방사선을 한번에 받아야 한다.
방사성물질이 몸 안에 들어오면 반감기가 달라지는 것도 인체 영향을 단정짓기 어려운 이유다. 체내에 들어온 방사성물질은 음식물과 마찬가지로 대사과정을 거쳐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몸 밖에 있을 때와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체외에서 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물리적 반감기, 체내에서 반이 되는 시간을 생물학적 반감기라고 부른다. 신진대사 능력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니 생물학적 반감기도 당연히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물리적 반감기가 30년인 세슘은 생물학적 반감기가 평균 110일 정도로 준다. 반대로 요오드는 물리적 반감기가 8일밖에 안 되지만 생물학적 반감기는 152일로 훨씬 길다. 하위호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선량평가연구팀장은 "여러 장기로 퍼지는 세슘과 달리 요오드는 특정 장기(갑상선)에 몰려 오래 머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리적 반감기가 2만4,000년이나 되는 플루토늄은 뼈에 달라붙으면 생물학적 반감기가 약 20년, 간에 붙으면 50년이 된다.
약 되는 방사선?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극미량의 방사선은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방사선 중에는 물질을 산화시키는 게 있다. 중성인 분자나 원자에서 전자를 빼앗는 것이다. 생체물질이 산화하는 과정이 바로 스트레스인데 방사선이 체내에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그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체 면역기능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라돈 온천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주운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많은 양을 받으면 유전자 돌연변이나 암이 생기겠지만, 적은 양의 방사선이 들어오면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면역기능을 높이게 된다"며 "이 같은 효과를 '호메시스 이론'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과거 브라질에서 우라늄광산 주변에 있는 한 마을 주민들이 특히 오래 살아 그 이유를 분석해본 결과 이 같은 이론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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