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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농가 되찾는 봄/ <상> 아물지 않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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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농가 되찾는 봄/ <상> 아물지 않은 상처

입력
2011.04.0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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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의공무원 김희원씨의 4개월 고투

경기도 남양주 소재 경기도 제2축산위생연구소 북부지소. 지난 겨우내 구제역과 지긋지긋한 싸움을 벌인 곳이다. 지난 1일 만난 이 곳 소속 수의공무원 김희원(35)씨는 이날도 경기도 축생위생연구소에서 열린 구제역 관련 회의를 막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구제역은 끝난 거죠?"

"끝나긴요. 사그라지긴 했지만 절대 끝난 건 아닙니다."

"재발할 수도 있다는 건가요?"

"경각심을 늦춰선 안 된다는 겁니다. 특히 백신 접종 이후 질병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진 것 같아 요즘 재입식 준비하는 농가를 다니면서 '이럴 때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작년 11월28일 안동에서 첫 발생. 이달 3일로 127일째다. 전국이 이 역병(疫病)을 앓았다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최대 피해지역을 꼽으라면 단연 경기도다. 경기도에서는 전체 살처분 가축(347만 마리) 중 절반인 173만여 마리가 매몰됐다. 특히 김씨가 근무하는 경기도 제2축산위생연구소 북부지소는 구리, 남양주, 포천, 그리고 가평 일대 가축방역 및 축산물 검사를 총괄하는 곳. 그가 이 곳에서 4개월간 벌인 구제역과의 전쟁은 말 그대로 피눈물 나는 기록이었다.

작년 12월14일. 직원들이 고깃집에서 송년회로 연말 분위기를 한껏 내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경기 연천ㆍ양주에서 구제역 의심신고가 들어왔으니 비상 대기하라는 것. 수의공무원 10명은 다음 날 파주와 양주로 파견됐다. "파주로 가면서도 '설마, 오래가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결과가 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됐다.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초동 방역 실패로 경기도로 넘어왔고, 파주 고양 가평 포천 김포 등 삽시간에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처음엔 하루 의심신고가 10건 정도 들어왔지만, 곧 20건으로 늘었고, 많은 날에는 30여건에 달하는 날도 있었다.

고통스런 일은 역시 살처분이었다. 김 씨는 방역관 자격으로,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소와 돼지를 묻었다. "자정까지 하면 하루에 세 농가까지 가능한데 신고가 밀물처럼 들어오니까 그 속도를 도저히 못 따라 잡겠더라구요." 숨이 채 끊어지지도 않은 가축들을 묻어야 한다는 것, 그건 해보지 않은 사람은 차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퇴근도 못한 채 여관방과 찜질방을 전전했다. 그래도 이 정도 고생은 참을 만 했다. 살처분을 위해 농민들을 설득시키는 일은 정말로 고통이었다.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 포함된 농가의 반발이 특히 심했지요. 내 소가 구제역에 걸린 것도 아닌데 왜 죽이냐는 것이었습니다. 파주에선 한 젖소농가 아주머니가 '소를 죽이려면 나부터 죽여라'며 그 추위에 내복바람으로 농장에 드러눕는 일도 있었습니다. 살처분하는 게 우리의 임무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더군요."

현장에서 겪은 구제역은 남달랐다. 워낙 살처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니까, '이러다 돼지를 전부 묻는 건 아닌가'하는 걱정 속에 방역관들 사이에선 '빨리 백신을 놔야 하는 것 아닌가' '과연 살처분이 최선의 방법인가'하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다른 악재까지 겹쳤다. 12월23일 새벽 1시반쯤 살처분 작업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중앙난간을 들이받는 교통사고가 났다. 과로 때문이었다. 동료는 갈비뼈 7개가 부러져 한 달간 입원했지만 다행히 김씨는 검사 결과 별 이상이 없어 3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다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방역과 살처분 작업에 투입된 공무원들이 과로로 순직했다는 소식도 접했다. "우리 신세가 너무 처량했어요. 직원들 표정도 굳어져 가고 살처분은 계속 되니까 정말 끝이 보이지 않더라구요. 2월초가 되어도 구제역이 끝나지 않으니까 그땐 정말로 절망감이 들더라구요."

설 연휴 때 쉰 이틀 말고는 휴일도 없었다. 그러다 전국 백신접종이 완료된 2월 중순부터 정부 정책이 부분 살처분으로 바뀌면서 김 씨도 주말에 하루씩 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요즘은 포천 영북면에서 구제역 발생 농가 8곳의 방역ㆍ청소 점검을 맡고 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정말로 이젠 이런 일이 없어야겠지요. 큰 희생을 치렀으니 꼭 그렇게 될 겁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 농가 가축 재입식 '주저주저'

'재발가능성도 높고, 가격도 오르고…'

구제역이 잦아들었지만, 축산 농민들은 축사에 가축을 새로 들여오는 재입식을 고민하고 있다. 구제역 경보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되고, 구제역이 발생한 75개 시ㆍ군의 이동제한 조치도 3일까지 모두 해제됐음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성희 의정부시청 지역경제과장은 "우리 지역에 살처분한 다섯 농가 가운데 두 농가는 축산업을 아예 포기했다. 나머지 세 농가도 '조금 더 지켜보겠다'면서 재입식을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충북 청원군청 관계자는 "급하게 재입식을 하기 보다는 축사 소독 및 청소를 철저히 해 혹시 모를 구제역 재발을 경계하는 농장들이 많다"고 현재 분위기를 전했다.

재입식을 결정해도 수요가 많거나, 가격이 올라 가축 구하기도 쉽지 않다. 파주시청 관계자는 "재입식을 신청한 농가가 많은데 종돈(씨돼지)이나 소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고 말했다. 가축을 가진 농가들이 값이 오를 것으로 믿고, 매물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동두천시청 관계자는 "재발 가능성뿐 아니라 한우나 젖소, 돼지 등의 가격이 워낙 올라 입식에 필요한 자금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많은 농가들이 관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렇다고 입식 시기를 마냥 늦출 수만은 없다. 돼지든 소든 가축이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자랄 때 까지는 1~3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은 소득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재입식한 가평의 박윤희(56)씨는 "보상금으로 대출금을 일부 갚았지만 남은 대출금의 이자 등 꾸준히 들어가는 비용이 많아 일찍 결정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 관계자는 "관할 시ㆍ군청과 방역기관의 2차례 소독 및 청소점검을 확인 받은 뒤 바이러스 생존가능기간인 30일 이상 지난 후 가축을 들여오는 규정을 지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 매몰지, 구제역 사태 2라운드

3일 가축이동제한조치가 풀림에 따라 구제역은 사실상 종료단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환경문제에 관한 한, 구제역은 여전히 언제 터질 지 모를 '휴화산'이나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시민단체나 일부 환경전문가들은 "날씨가 따뜻해지면 환경재앙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일 현재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AI)에 따른 가축 매몰지는 14개 시ㆍ도에 총 4,790곳. 정부는 올 1월부터 4차례에 걸쳐 4,199곳의 매몰지를 전수 조사했고 이 가운데 417곳에 대한 정비와 보완작업을 지난달 말로 끝냈다. 정부는 이로써 전국 매몰지의 안전성이 대부분 확보됐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의 견해는 다르다. 얼었던 땅이 녹고 예기치 않은 폭우라도 내릴 경우, 매몰지는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 시민환경연구소 고도현 연구원은 "정부는 침출수를 차단하는 차수벽 등을 예로 들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현장에 가 보면 급한 대로 땜질만 해 놓은 매몰지가 수두룩한데 정부는 매뉴얼이 만능인 것처럼 얘기한다"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침출수로 인한 식수오염이다. 침출수에는 가축 장기에 있던 대장균, 장바이러스 등 병원성 미생물과 질산ㆍ암모니아성 질소 등 유해 화학물질이 섞여 있어 여기에 오염된 지하수를 마실 경우 각종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전국 매몰지 주변 300㎙ 내에 있는 지하수 관정 3,000개에 대한 수질검사 결과, 143곳에서 음용수 수질 기준을 웃도는 오염물질이 나왔다고 밝혔다. 다만 "침출수 영향이 아니라 축산폐수나 화학비료에 의한 것"이라면서, 구제역과의 연관성은 부인했다.

하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이 같은 기존 환경부 검사기법으로는 침출수 영향을 판별할 수 없다"며 "자체 개발한 검사를 통해 경기 이천시에서 침출수로 인한 오염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정부 내에서조차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에 대해 이견이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당장의 안전성 문제를 떠나 매몰지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는 "침출수 오염은 특히 비가 많이 올 경우 심각해지는 것으로 적어도 향후 10년 간은 지켜봐야 할 문제"라며 "정부도 당장 변명에 급급하기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재매립 같은 근본적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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