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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상한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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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상한 진보

입력
2011.04.0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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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전쟁 상황이 자못 혼란스럽다. 연합군의 공습으로 곧 괴멸될 듯하던 카다피 정부군은 이내 반군을 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동부 벵가지를 근거로 삼은 반군 쪽의 ‘조건부 휴전’ 제안도 언뜻 다급한 처지에서 나온 것으로 비친다. 외무장관이 영국으로 달아나는 등, 카다피 정권이 저절로 무너질 조짐이라는 관측과 어긋난다. 게다가 영국 프랑스를 앞세워 실제로는 공습을 주도한 미국이 “이제 뒤로 빠지겠다”고 선언,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라는 주장만 두드러진다.

■이런 와중에 우리 사회 ‘진보’가 오락가락하는 모습에 눈길이 갔다. 진보 언론은 적극 개입, 군사 개입을 촉구하다가 정작 대규모 공습이 계속되자 주춤하는 듯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진보를 편드는 미디어 비평지가 적극 개입론을 비판한 것도 색달랐다. 그 때문인지 대표적 진보신문은 “내정 간섭은 안 된다”는 모호한 주장을 폈다. 반면 다른 진보신문은 카다피를 제거하려면 지상군 파병이 필요하다고 재촉했다. 진보 정당도 민노당은 내정 간섭을 비난하고, 진보신당은 무기 지원을 촉구하는 것으로 갈렸다. 늘 외치는 인권 자유 민주 자주 등을 잣대로 사태를 올바로 분별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내부 비판이 거슬렸는지, 어느 진보 논객은 “공습은 옳았다”고 새삼 강조했다. 광기 어린 무차별 학살을 막는 것이 절박했고, 독재국가의 주권보다 인권과 생명이 소중하다는 논리다. 다 그럴 듯한데, 지상군 파병에 카다피 축출까지 촉구한 것은 너무 나간 느낌이다. 옛 식민 종주국 영국과 프랑스가 유난히 전쟁을 서두른 것을 인도주의적 동기로만 보는 것도 이상하다. 국제사회가 언제 그렇게 순수해졌을까. 또 지금껏 인도주의적 개입을 표방한 해외 전쟁에 파병하는 것을 늘 반대한 것은 뭔가 싶다.

■전쟁의 전망은 엇갈린다. 카다피와 반군의 대치가 얼마간 지속될 수 있지만, 무기 지원과 지상군 투입 논란은 카다피 축출을 예고한다. 연합군은 민간인 피해가 늘어날 전쟁 확대에 앞서 명분을 쌓는 모습이다. 서구 진보언론은 “반군이 전세를 뒤집어 대량학살이 우려되면 공습으로 막을 것이냐”고 묻고 있다. 리비아 전쟁을 ‘정당한 개입’으로 보는 우리 진보 쪽에도 묻고 싶은 게 많다. 인권과 자유가 독재국가의 주권보다 소중하다면, 북한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북 삐라 풍선에는 반대하면서 리비아 전쟁에 적극 찬성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을 닮은 게 아닌가.

강병태 논설위원 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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