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4일 발표한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과 축산업 선진화 방안’. 사상 초유의 구제역 사태로 비록 소ㆍ돼지는 잃었지만, 향후 같은 사태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외양간을 고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대책에는 가장 민감한 사안이 제외되면서 논란이 됐다. 바로 지역별 가축 사육 총량제. 이번 구체역 사태가 ‘벌집 사육’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한 만큼 분뇨처리량, 방역능력, 육류소비량 등을 기준으로 지역별로 적정 사육 규모를 산출해 일정 수준으로 조절하자는 것이다.
당초 정부는 지역별 가축 사육 총량제의 도입을 적극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육 규모가 커지면서 좁은 축사에 소와 돼지를 몰아 키우다 보니 가축의 면역력이 약화되고, 결국 구제역같은 전염병이 삽시간이 전국으로 퍼져 무려 347만마리를 살처분하는 대재앙을 맞은 점에 주목한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양적 팽창에 치우쳐 분뇨 악취 등으로 축산농가가 혐오시설로 간주되는 만큼 친환경 축산 등 질적 개선과 일각에서 제기한 동물복지 문제도 고려하면 사육 총량제 도입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우려되는 점도 많다. 아직도 많은 축산농가들이 영세한 상황인데, 이번에 도입이 결정된 허가제보다 한층 강력한 사육 총량제를 실시할 경우 축산업이 고사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상황. 아울러 가축 사육 규모를 정하는 것이 자칫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고, 사육 총량제 도입은 식량주권을 위협한다는 주장도 무시할 수 없다.
네덜란드 등 축산 선진국도 가축 사육 총량제를 도입할 때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고 알려진다. 제도 도입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 양측의 주장을 직접 들어봤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 가축사육 총량제 찬성
이번 구제역으로 축산농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축산기반이 붕괴돼 지역경제는 물론 국가경제에 큰 재난을 가져왔을 정도다. 직접적인 원인은 국경검역 및 초동방역의 실패였지만, 동절기 이동통제의 어려움과 축사환경 문제도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축산업 선진화를 위해서는 가축질병과 축산환경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축산 선진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허가 축사를 엄격히 규제하고, 가축분뇨 살포면적 확보와 일정기준에 의한 가축두수의 제한을 실시하고 있다. 덴마크는 지역특성에 따라 축산업을 세분화하고, 사육두수 및 시가지와 축사의 거리에 제한을 두고 있다. 벨기에는 인산 발생량을 기준으로 백색, 회색, 흑색 지역으로 구분해 가축두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폐업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네덜란드 역시 가축분뇨 생산쿼터제에 따라 가축두수를 제한한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친환경 축산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사실 정부는 사육규모가 커지면서 축산분뇨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가 제기되자 사육두수 총량제를 검토한 바 있다. 2004년 농촌경제연구원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충남 홍성 등 가축사육 밀집도가 높은 지역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제8조에 지방자치단체장이 조례로 가축사육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 여주ㆍ파주 등 일부 지역이 도입하고 있으나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실효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실정이다.
일부에서는 적정 사육두수도 설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이 제도를 도입할 수 있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쇠고기 돼지고기 등 축산물의 자급률을 5년마다 정하도록 규정한 ‘농어업ㆍ농어촌 및 식품산업기본법’ 제14조에 따라 그 규모를 설정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자급률이 정해지면 축종별 사육두수가 정해지고 지역별 적정 사육두수를 고려해 볼 수 있다. 가축두수 총량제를 과밀지역부터 시작하려면 두당 분뇨 배출량은 정해져 있으므로 살포가능 면적을 조사ㆍ확정해야 한다. 현행법에 의한 살포 가능 면적과 향후 5년 내 확대 가능 면적을 고려하고, 그 면적의 인과 질소 함량을 측정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축산업 선진화 대책으로 축산업 허가제를 2012년부터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대규모 농가부터 시작하고, 중소농가는 등록제를 강화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제도의 목적이 가축질병의 예방에 있다면 소규모 농가도 함께 적용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이 경우 무허가축산 문제를 해결하고 폐업보상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지역별 가축두수 총량제’가 지나친 규제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그래서 정부도 이번 축산업 선진화 대책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환경ㆍ위생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축산업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자꾸 미루다 보면 축산업 발전에 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다만 필자도 제도 도입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가축분뇨 처리시설에 대한 일제 조사 실시 ▦축사와 분뇨처리시설의 악취제거 방안 마련 ▦가축분뇨(인산, 질소 등)의 기준 설정 ▦현행법에 따른 살포가능 면적의 토양조사와 향후 살포가능 면적 조사(간척지, 산림 등) ▦과밀지역의 기준 설정 및 지역 특성을 어떻게 구분 할 것인지 등의 충분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사육두수가 줄어들거나 퇴출되는 축산농가 등에 어떤 방식으로 폐업보상을 해줄지 등에 대한 검토도 면밀히 이뤄져 관련 대책을 분명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지금부터라도 사육두수 총량제를 공론화해야 한다. 우리 현실에 맞는 방식으로 도입한다면 진통은 따를 지라도 궁극적으로 축산업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축산경제연구원 노경상 원장
■ 가축사육 충량제 반대
지난해 11월 28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현재까지 전국 81개 시군에서 소 돼지 등 가축 347만여 마리가 살처분 됐다. 국가방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자 정부는 축산업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지역별 가축 사육두수 총량제를 검토하였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어 이번 선진화 방안에서는 배제했다.
정부가 사육두수 총량제 도입을 저울질 한 것은 밀집사육과 넘치는 분뇨 문제 때문이었다. 즉, 사육환경 개선을 통해 질병 발생 확률을 최소화하고, 분뇨도 적정량으로 조절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거론했다.
그러나 가축의 밀집 사육이 과연 가축 면역력 저하로 이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양돈 선진국인 네덜란드 등 유럽의 경우 단위 면적당 사육두수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비슷하거나 더 조밀한 사육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은 돼지(비육돈) 1마리 당 사육면적을 0.65㎡, 네덜란드는 0.8㎡로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기준은 0.8㎡다. 국가 전체적으로 우리나라는 980만 마리를 사육하고 있지만, 네덜란드는 우리나라 국토(9.9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크기(4.1만㎢)에 1,200만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밀집사육으로 바이러스 전파 위험이 증가하지만, 지역별 밀집 사육보다는 축사 단위 면적당 과밀사육에 의한 질병 발생이 더 위험하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는 축사 단위 면적당 사육두수는 높지만 축산분야 생산성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질병 방어체계가 우수하다. 네덜란드 어미돼지 1마리는 연간 25마리를 출하하지만, 한국은 15마리(통계청 2010년)에 머무는 점도 이를 증명한다. 밀집사육이 면역력과 가축방역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낮다고 판단할 수 있다.
지역별 양분과잉 문제로 지역별 사육두수 총량제 도입을 검토하였다면, 양분처리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사육두수 총량제 도입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님비 현상이 심해 퇴비 등 자원으로 쓰이는 가축분뇨를 발생 시군에서 다른 시군으로 이동할 때 어려움이 많다. 가축분뇨가 토양에 환원 시 화학비료를 대체하는 자원이지만, 타 시군에서 유입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사육두수 총량제 도입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미 국내 축산은 지역별 또는 소비처와 연결된 지역에 밀집되어 발달되어 있다. 경기 북부지역과 남부지역은 수도권 시장을 중심으로 축산이 밀집했고, 김해 인근지역은 부산 경남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따라서 지역별 사육두수 총량제를 도입하면 그 동안 축산업이 발달해 온 지역에 한 바탕 회오리 바람이 몰아칠 수밖에 없다. 농장 이전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지역별 사육두수 총량제 도입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율은 쌀을 제외하고 25%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축산물의 자급률은 돼지고기의 경우 80%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아직 돼지고기는 20%가 부족한 셈이다. 국민의 소비패턴이 삼겹살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돼지고기 100% 자급은 사실상 어려워 유럽과 미국에서 삼겹살을 비롯한 돼지고기를 매년 20만 톤이나 수입한다. 그 금액만 연간 9,000억원에 이른다.
돼지고기 자급률은 85%까지는 가능하다고 본다. 아직도 5%의 여유가 있다. 2009년 양돈매출액은 5조5,000억원. 사료산업, 기자재 산업, 도축업 등 관련 2, 3차 산업까지 고려한 파급효과는 매출액의 2.5배~3배에 이른다. 축산 연관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취업유발 효과와 성장 기여 효과 등을 감안할 때 사육두수 총량제 도입으로 국내 사육기반이 흔들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질병 발생문제와 사육두수 총량제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정선현 대한양돈협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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