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 번역하는 데 벌어진 사무적인 실수다" (3월 8일 기자간담회)
"번역 오류 문제를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 (4월 4일 브리핑)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의 한글본 오역 논란에 대해 결국 태도를 바꿨다.
지난 2월 첫 오역을 발견한 송기호 통상전문변호사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계속해서 잘못된 번역을 찾아내자 통상교섭본부는 결국 재검독을 실시, 모두 207개의 크고 작은 실수를 발견했다. '이 정도 번역오류를 갖고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는 식으로 고개를 꼿꼿이 세웠던 김 본부장도 마침내 4일 기자회견에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머리를 숙였다.
실수는 있을 수 있다. 1,279쪽의 방대한 분량을 번역하는데 어찌 착오가 없을까. 하지만 두 가지가 문제였다. 하나는 실수치곤 오역이 너무 많았다는 것. 아무리 시간이 촉박하고 인력ㆍ예산이 부족해도, 수백개 오역이 나온다는 건 창피한 노릇이다. 두 번째는 김 본부장의 태도. 처음부터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찬찬히 재검토하면 될 것을, 괜한 고집 부리다 여론과 야당의 반발만 더 사게 됐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오역을 낳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그리고 오역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국가적 위신을 떨어뜨린 것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김 본부장은 책임추궁과 관련해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문책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일선 실무자부터 저까지 책임을 공유하고 있기에 내 책임이 어디까지라고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번만큼은 어물쩍 넘어가선 곤란하다. '사과만 있고 책임은 지지 않는 정부'에게서 국민들은 진정성을 느끼지 못한다. 얼마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와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책임문제가 빠지는 바람에 그저 공허하게 느껴졌던 것처럼 말이다.
박민식 경제부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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