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무겁다. ‘긴장하지 말자’ ‘준비했던 대로만 하자’고 수없이 다짐하지만 가슴속 한 켠에 끈적하게 자리잡은 부담감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이래서 초보가 힘든가 보구나’라며 멋쩍은 웃음만 짓는다.
류중일(48) 삼성 감독과 양승호(51) 롯데 감독은 1일 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광주 원정 길에 오른 류 감독은 호텔 방에서, 부산 홈경기를 치르는 양 감독은 사직구장 근처 숙소에서 ‘내일’을 구상했다. 2일 오후 2시에는 2011년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린다.
프로 감독이란 자리가 다 그렇지만 류 감독과 양 감독의 어깨는 특히 무겁다. 소탈하고 무던한 두 사람이지만 막상 개막전이 다가오고 보니 밀려오는 부담감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았다. 애꿎은 담배만 자꾸 물었다. 감독이 된 뒤로 는 것은 걱정과 담배뿐이다.
류 감독은 최근 체중이 5㎏ 정도 빠졌고, 담배는 하루 평균 1갑에서 2갑으로 늘었다. 양 감독도 담배를 무는 횟수가 잦아졌다. 건강 생각하면 ‘끊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게 말처럼 잘 안 된다.
두 사람의 심적 부담이 큰 것은 단지 초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류 감독의 전임(前任)은 ‘천하의’ 선동열(49), 양 감독의 전임은 부산 팬들 사이에서 ‘교주(敎主)’로 통했던 제리 로이스터(59)다.
선동열이 누구인가? 현역 시절 화려했던 수식어는 제쳐두더라도 선동열은 감독 데뷔 첫해였던 2005년과 2006년 잇달아 한국시리즈를 제패했고, 지난해에도 예상을 깨고 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한국야구의 간판이다.
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때 류 감독은 이런 속내를 털어놓았다.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에 감독이 바뀌는 게 대부분이잖아요. 그런데 작년에 선 감독님은 2등 하셨어요. 제가 부담이 안 되겠습니까? 솔직히 부담 백배입니다.”
3년 계약의 첫해를 맞은 류 감독의 올해 목표는 우승. 아니 우승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작년에 2등 했던 팀의 감독이 올해도 2등이 목표라고 하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류 감독의 필승전략은 정공법이다. 이런 저런 꼼수 쓰고, 잔머리 굴리는 것은 영 적성에 안 맞는다. 그냥 주어진 여건에서 우직하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게 류 감독에겐 제격이다.
양 감독의 부담도 류 감독 못지않다. 프로에서 선수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던 양 감독이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포용력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 양 감독은 2004년 두산 수석코치, 2006년 LG 감독대행을 지냈고 2007년부터 작년까지 4년간은 모교인 고려대 지휘봉을 잡았다.
양 감독이 오기 전에도 롯데는 잘나갔다. 로이스터가 감독이었던 2008년부터 3년 연속 가을에 잔치를 벌였다. 단지 가을에 야구하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롯데는 3년 연속 준플레이오프에서 고배를 들었다. 부산 팬들은 올해만은 롯데가 늦가을까지 야구하기를 손 모아 기도한다.
롯데 팬들의 로이스터 사랑은 유별났다. 작년에는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일간지에 광고까지 게재했다. “거인의 심장을 뜨겁게 해주신 당신, 이제는 우리가 당신의 심장을 뜨겁게 해드리겠습니다.” 로이스터 감독과 재계약 포기 후 롯데는 거센 후폭풍에 시달렸다.
프로구단 스카우트, 코치, 아마추어 지도자 등을 두루 경험한,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양 감독이 이 같은 부산 정서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욕심도 난다. 양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 모자 챙 안쪽에 80을 썼다. 올해 80승을 해서 플레이오프에 직행하겠다는 간절한 염원이자 자기최면이다.
요즘 양 감독은 부산에서 ‘칙사 대접’을 받는다. 택시에서 내리려 하면 운전기사는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식당에서도 주인 아주머니가 “그냥 가이소”라고 한다. ‘롯데 감독’이 아닌 ‘우리 감독님’인데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류중일 감독과 양승호 감독은 야구 선후배라는 것 빼면 특별한 인연이 없다. 경북고-한양대 출신인 류 감독은 대구 토박이, 신일고-고려대를 나온 양 감독은 서울내기다. 류 감독은 삼성에서만 25년째이고, 양 감독은 해태-OB-LG-고려대를 거쳐 롯데 감독이 됐다.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하지만 올해 들어 두 사람에겐 초보 감독이라는 공통분모가 생겼다. 전임 감독이 ‘폭풍 카리스마’였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성적표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프로 감독이 된 류중일과 양승호. 두 사람의 어깨가 무겁기만 하다.
●류중일 감독은
생년월일: 1963년 4월28일
신체조건: 176㎝ 74㎏
출신교: 삼덕초-대구중-경북고-한양대
현역 시절 포지션: 내야수
유형: 우투우타
혈액형: A
별명: 류격수(류중일+유격수)
계약조건: 2011년부터 3년에 계약금, 연봉 각 2억원
●양승호 감독은
생년월일: 1960년 1월10일
신체조건: 178㎝ 88㎏
출신교: 우이초-신일중-신일고-고려대
현역 시절 포지션: 내야수
유형: 우투우타
혈액형: A
별명: 정원관, 김구라
계약조건: 2011년부터 3년에 계약금, 연봉 각 2억원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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