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들이 국가시험 실기문제를 조직적으로 유출했다는 경찰의 수사 발표는 충격적이다. 경찰에 따르면 전국 41개 의대 연합조직인 '전국 의대 4학년 협의회(전사협)'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문제가 유출됐다. 전사협 가입자는 지난해 실기 응시자 3,300여명 중 2,700여명이니 사실상 이 나라 의대 4학년 전체가 졸지에 범죄 연루자로 전락하게 된 셈이다.
경과는 이렇다. 지난해 9월 13일부터 11월 30일까지 의사 국시 실기시험이 실시됐다. 응시자는 많은데 시험장소는 한국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원 한 곳뿐이어서 하루 60여명씩 조를 나눠 51일에 걸쳐 시험이 진행됐다. 이에 먼저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전사협 홈페이지에 문제 내용을 올리면, 뒤의 수험생들이 이를 숙지하는 식으로 공유했다. 경찰은 전사협 전 회장 등 15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하지만 의대생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사건의 본질은 '문제 유출'이 아니라 '족보 공유'라는 것이다. 의대든 법대든 공부 범위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시험 때 핵심이 잘 정리된 노트인 '족보'나 기출문제를 참고하는 건 일상사다. 인터넷에는 수험생들이 당해 시험문제를 유출해서 본 게 아니고, 기출문제를 공유한 것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운전면허시험 문제도 나돌지 않느냐"는 전사협 전 회장의 얘기도 같은 맥락인 셈이다.
우리는 지난해 유출됐다고 발표된 103개 문항의 내용이 전사협 홈페이지에 게시된 시점을 수사팀에 재확인했다. 그 시점이 시험 전이나 후라면 '족보 공유'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일단 "시험 전후에 게재된 건 없다"면서도 "문항 내용이 언제 게시되든 유출 아닌가"라는 의견도 내놓아 혼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의대생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보다 정확한 진상을 기다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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