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영화 바람 타고 인수…인수…거침없는 '강철 인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는 세계에서 억만장자가 가장 많이 사는 도시다. 미국의 포브스가 최근 발표한 세계 부자 순위에 따르면 모스크바에는 모두 79명의 억만장자(개인자산 10억달러 이상 갑부)가 살고 있다. 이는 2위인 미국 뉴욕(58명)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러시아 전체로 보면 억만장자 수는 101명으로 미국(413명), 중국(115명)에 비해 적지만 경제규모 등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수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러시아 갑부의 상당수는 '올리가르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옛 소련이 해체되고 자본주의 체제로 이양하는 도중 에너지와 철강 부문에서 많은 대형 국영기업이 민영화되었는데, 이때 특혜를 받아 이 기업들을 차지한 사람들이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다.
빌 게이츠의 성공 신화로 대표되는 미국의 '창업자형 갑부'와 달리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는 정경유착과 검은 뒷거래로 부자가 된 사례가 많아 존경을 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40대의 젊은 나이에 185억달러의 자산으로 러시아 두 번째 부자이자 세계 부자순위 29위에 오른 철강 및 광업 기업 세베르스탈의 알렉세이 모르다쇼프 회장은 러시아에서 흔치 않은 '자수 성가형 갑부'이다.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기회를 잡기는 했으나, 거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민영화 이후 그가 보여준 강력한 추진력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경제학 공부해 철강공장 사장 되다
모르다쇼프는 1965년 당시 비교적 큰 철강공장이었던 세베르스탈의 본거지인 옛 소련의 체레포베츠시에서 태어났다. 이 회사에서 일했던 부모 밑에서 자란 모르다쇼프는 어릴 적 매월 자신 몫으로 400g의 소시지와 200g의 버터를 배급 받았다고 한다.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88년 고향에 돌아와 세베르스탈의 사내 이코노미스트로 취직한 뒤 승진을 거듭, 92년에는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된다.
소련의 붕괴와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경제학을 공부했던 그에게 커다란 기회를 안겨 주었다. 전국적인 민영화 바람 속에 공장 경영진은 모르다쇼프에게 세베르스탈의 민영화 계획 수립을 부탁한다. 이때 모르다쇼프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지분의 대부분을 자신이 직접 인수해 버린다. 이후 예전 경영진을 몰아낸 후 96년 31세의 나이에 세베르스탈의 최고경영자(CEO)가 된다.
이후 모르다쇼프는 '탱크', '강철인간'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세베르스탈 지분의 80% 이상을 갖고 있는 그에게는 회사의 확장은 곧 부의 축적이었다. 소련 붕괴 후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매물로 나온 철강회사는 물론, 이탈리아 철강회사를 인수하는 등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하지만 러시아 밖에서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르셀로-미탈 M&A 전쟁에서 이름 알려져
외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모르다쇼프가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2006년 아르셀로와 미탈의 적대적 인수ㆍ합병(M&A) 전쟁이 벌어졌을 때였다. 당시 미탈스틸이 프랑스 아르셀로에 적대적 M&A를 선언하자 아르셀로는 러시아 세베르스탈과 합병해 미탈 대신 세계 1위 철강회사가 되려고 했다. 양사가 합병하면 모르다쇼프 회장은 아르셀로의 지분 32%를 확보한 최대주주가 되며 '철강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결국 아르셀로는 미탈스틸에 인수됐지만, 모르다쇼프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젊은 올리가르히로 국제사회에 알려졌고 1억7,500만달러의 위약금도 받았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모르다쇼프 대해 "러시아 밖에선 무명에 가깝던 그가 이제 러시아를 넘어 글로벌 플레이어로 부상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모르다쇼프는 최근 아프리카 광산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세베르스탈은 지난해 5월 아프리카 콩고와 가봉 등에서 광산개발 사업권을 가진 코어마이닝 지분 16.5%을 인수했고, 8월에는 캐나다 금광업체 하이리버 골드마인을, 10월에는 기니에 사업권을 갖고 있는 크류 골드를 인수했다. 금 사업부문의 외형 확대를 위해 런던증시 상장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와 관계 유지
정경유착으로 성공한 기존의 올리가르히와는 다르다지만, 그 역시 러시아의 기업인으로서 크렘린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4년 대선 당시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모르다쇼프는 러시아 민영TV채널인 Ren-TV도 갖고 있는데, 여성 앵커 올가 로마노바가 방송 중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자 프로그램을 없애버려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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