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그냥 'Paul'이다. 밋밋하기 그지없다. 흔하디 흔한 영어권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다니. 하지만 누구의 이름인지 알게 되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고 호기심이 자연 솟아난다. 1947년 미국 와이오밍 주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이름의 주인이다. 그뿐이랴. 그 외계인이 폐에 무리가 갈 정도의 애연가이고, 지구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음주가무를 즐긴다. 그러니 국내 개봉 제목이 '황당한 외계인: 폴'일 수밖에.
B급 영화 '황당한 외계인: 폴'은 재미있다. 재치가 흐르고, 기지가 넘친다. 박장대소는 드물어도 유쾌한 키득거림이 줄곧 이어진다. 조금은 고약한 유머들이 수시로 등장하지만 눈살 찌푸리게 하지 않는다. SF영화들의 전통을 비틀면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이 영화, 귀엽고 사랑스럽다. 좋은 영화란 돈이 아닌 머리와 열정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웅변하는 엉뚱하고도 발랄한 SF 코미디다.
영국의 SF 마니아 그림(사이먼 페그)과 클리브(닉 프로스트)가 초반 영화의 중심을 차지한다. 세계 최대의 만화 애니메이션 축제인 미국 '코미콘'을 방문한 두 사람은 내친김에 트레일러를 몰고 인근의 SF 성지들을 순례한다. 그들의 평생 소원은 외계인과 대면하는 것. 꿈에 그리던 장소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는 재미에 흠뻑 빠진 두 사람 앞에 정체불명의 도망자가 불쑥 나타난다. 그가 바로 외계인 폴(목소리 연기 세스 로건). 커피와 베이글과 담배를 즐기고, 두주불사인 그는 60년 넘게 그를 보호해준 미국 특수 정보기관에 의해 쫓기는 상황. 그림 일행의 트레일러에 얻어 타고 고향으로의 탈출을 도모한다. SF라면 이골이 난 그림과 클리브이니 이 황당무계한 모험을 꺼릴 이유가 없다. 한쪽 눈에 장애를 가진 기이한 여인 루스(크리스튼 위그)가 셋의 도주 극에 끼어들면서 별스런 소동은 부피를 더욱 키운다.
화장실 갔다가 뒤처리는 제대로 하고 나오는지 심히 의심 가는 지질하고 지질한 두 인물 그림과 클리브의 좌충우돌이 배꼽을 잡게 한다. 홀쭉한 그림과 뚱뚱한 클리브의 대조적인 외모부터 웃음을 예고한다.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도망 다니면서도 사고를 곧잘 치는 폴의 행태도 웃음거리다.
이젠 고전이 된 영화 '이티'(1982)를 노골적으로 변주한 점이 이채롭다. '성인용 이티'라는 광고 문구는 이 영화의 정체성을 그대로 대변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폴의 조언에 의해 '이티'를 만들었다는 장면(폴이 통화할 때 스필버그 목소리가 실제 등장한다. 페그와 프로스트가 올해 개봉할 스필버그의 신작 '틴틴의 모험: 유니콘의 비밀'에 출연한 게 인연이 됐다.) 등에선 무릎을 치게 된다.
두 주인공 페그와 프로스트가 각본을 썼다. 두 사람은 우스개와 공포를 뒤섞은 좀비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에 출연(페그는 각본도 겸했다)하며 익히 재능을 발휘했다. '슈퍼 배드'(2007)의 그렉 모툴라 감독. 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