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이다. 제작비 100억원을 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세 편이 올 여름 극장을 찾는다. '7광구'(감독 김지훈)와 '퀵'(감독 조범구), '고지전'(감독 장훈)이 유례 없는 혈전에 투입될 전사들이다. 여름 휴가철은 극장가 한 해 최고의 대목. 저마다 흥행 맹주를 자처하며 덤벼드는 시장이라 해도 한국형 블록버스터 세 편만으로 극장가는 차고 넘칠 듯 하다. 한여름 뙤약볕보다 뜨거울 흥행 각축이 벌써부터 위태롭게 느껴진다.
세 편의 영화 중 눈길은 단연 '7광구'와 '퀵'에 쏠린다. 고립무원의 바다 석유 시추선에 나타난 해양 괴생물체와 사투를 벌이는 인간들의 사연을 전하는 '7광구'와, 폭탄을 배달하게 된 퀵 서비스 직원의 모험을 그린 '퀵'의 투자배급사는 CJ엔터테인먼트, 제작사는 JK필름이다. 투자배급사 한 곳이 블록버스터 두 편을 한꺼번에 선보인 경우는 전례가 없다. 더욱이 한 영화사가 블록버스터 두 편을 동시에 내놓는 건 영세한 충무로에선 감히 꿈도 못 꿀 일이다. 지금까지 전무했고 언감생심일 일이 올 여름 벌어지는 것이다.
'7광구'와 '퀵'의 총지휘자는 JK필름의 대표인 윤제균 감독. 2009년 '해운대'로 1,000만 클럽에 가입한 흥행의 명수다. '7광구'는 7월21일, '퀵'은 8월4일 각각 개봉할 것으로 알려졌다. 2주라는 완충기간을 두고 있지만 사실상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셈이다. 결국 올 여름 시장은 '윤제균 vs 윤제균'이란 말로 압축할 수도 있겠다.
윤 감독은 연출뿐만 아니라 제작자로서도 뚜렷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시크릿'(2009)을 제외하고 최근 그가 제작한 영화들은 쏠쏠한 흥행 재미를 맛봤다. 지난해 개봉한 '하모니'(감독 강대규)는 300만명을 넘겼고, 저예산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감독 김광식)은 불과 69만명이 찾았지만 돈을 남겼다. "대중의 취향을 꿰뚫는 감각이 남다르고 사업 수완도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는 자신이 메가폰을 쥘 제작비 100억원대의 '템플 스테이'를 한미합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충무로 일각에선 '7광구'와 '퀵'의 앞다툰 개봉이 광고기획사 출신 윤 감독의 전략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제균 바람'을 일으켜 라이벌 '고지전'을 따돌리고 여름 시장을 독식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것이다. "내부 출혈경쟁으로 자칫 한국영화계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충무로에서 성공하려면 여우가 돼야 한다지만 곰도 성공한다는 걸 난 보여주고 싶다." '해운대'가 한창 흥행몰이 할 때 윤 감독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과연 그는 곰일까 여우일까. 여름 극장가의 판도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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