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음식인문학' 짜고 매운 한식, 어디서 시작됐을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음식인문학' 짜고 매운 한식, 어디서 시작됐을까

입력
2011.04.01 08:05
0 0

음식인문학/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발행ㆍ560쪽ㆍ3만원

화끈하고 때로는 독한 한국인의 특성을 고추 맛에 비유하곤 한다. 남미가 원산지인 고추는 임진왜란 무렵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널리 재배되기는 18세기부터다. '왜초' '왜개자' 등으로 불리던 외래작물이 어떻게 우리 조상님들의 밥상을 점령하게 됐을까.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신간 <음식인문학> 은 제목 그대로 문화와 역사로서의 음식을 인문학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10여년간 공들여 써낸 논문들을 엮은 것이라 만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다루는 소재는 일상의 낯익은 음식들이다. 비빔밥의 유래를 살피다 음식담론에 얽힌 이데올로기를 건드리고 개항기 외국사신을 접대하는 연회 상차림에서 조선음식 근대화의 흐름을 캐내는데 별것 아닌 식재료들로도 잔칫상을 뚝딱 차려 내는 숙수(熟手)의 손맛을 연상케 한다.

저자는 18세기 고추가 널리 쓰이게 된 연유를 소금 부족에서 찾는다. 이앙법 실시로 쌀 생산이 늘어 밥 중심의 식단이 정착하며 자연스레 반찬들은 짠맛 중심으로 변했는데 어물 소비의 증가 등으로 소금 수요가 급증하면서 짠지 계통 김치가 양념김치로 대체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밥+짠 반찬+매운맛'이 기본인 한국식 식단 형성에 고추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비빔밥이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자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궁중음식설까지 등장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아직 없다. 비빔밥은 어디서든 쓱쓱 비벼 '먹기 좋은 음식'인데 음식 한류 바람을 타고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된 '생각하기에 좋은 음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에 등장한 음식 관련 묘사 317건을 분석한 글도 흥미롭다. "쌀 좀 떠 가지구 가서 술 몇 사발 받아 오게"라는 대사는 당시 쌀이 서민들 사이에선 밥으로 지어 먹기보다는 물물교환용으로 사용됐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16세기가 배경인 소설에서 19세기 초에나 한반도에 들어온 감자를 쪄서 손님을 대접한다거나 '찬이 없어 싱거우니 고추장을 떠오다'는 대목 등 옥에 티도 적지 않다.

일제 치하에서 말살돼 가던 조선정조(朝鮮情調)를 되살리기 위해 <임꺽정> 을 썼다던 벽초는 음식 묘사에서도 철저히 '조선적인 것'을 추구했는데, 관련 문헌을 제대로 확인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나아가 오늘날 한국학 연구자들이 무수히 생산해 내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벽초를 비롯한 식민지 지식인들이 추구한 '조선적인 것'과 같지 않을까 묻는다. "지난 20세기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상상 속의 조선'을 강화하는 일에 매달려 온 역사가 아닐까? (중략) 이제 역사 속에 실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경험적 삶 속에 재현하는 작업을 할 때가 되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