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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긍정의 배신' 긍정 이데올로기는 소비자본주의와 함께 번식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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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긍정의 배신' 긍정 이데올로기는 소비자본주의와 함께 번식해왔다

입력
2011.04.0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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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전미영 옮김/부키 발행·304쪽·1만3,800원

미국 최대통신기업 AT&T는 1994년 1만5,000명을 정리해고하면서 직원들을 동기유발 행사에 보냈다. 유명 강사 지그 지글러는 "그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라고 했다.

다운사이징 선전의 고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는 미국에서 1,000만부가 팔렸는데 기업들이 대량 매입해 직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상당수다. 미국에서 찍어내자 마자 380만부를 찍고 지난해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시크릿> 도 무언가를 진실로 강력히 원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한다.

요즘은 도처에 이런 긍정 또는 낙관적 사고라는 것이 퍼져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에 반문을 제기하기가 어려운 분위기이다. 미국의 시민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 에서 긍정 또는 낙관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와 공생 관계를 맺고 발전해 왔으며, 이제는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배적 신념 체계가 됐다는 점을 밝혀낸다.

여러 사회 이슈에 관한 책을 써 온 저자는 유방암 진단을 받은 직후 투병자들을 돕는 각종 긍정산업의 규모가 엄청나며,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암치료가 긍정이라는 주술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보고 긍정이데올로기를 파고들었다.

그가 밝혀낸 긍정이데올로기의 발전 과정은 이렇다. 미국의 초기 종교 이념은 금욕과 엄격한 자기 절제를 강요하는 칼뱅주의였고, 이는 개인의 욕망을 억눌러 사회적 우울증을 낳았다. 1800년대 중반 칼뱅주의에 반발한 일단의 종교인들이 긍정주의의 뿌리라 할 신사상운동을 일으켰다.

20세기 초 이 사상 조류는 성공과 부를 찬미하는 자본주의와 은밀하게 공생하며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저자가 "자기기만의 고전"이라고 표현하는 나폴레온 힐의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 는 대공황 당시에 나왔다. 20세기 중반 이후 화이트 칼라를 비롯, 긍정적 사고가 요구되는 일자리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게 됐다. 다운사이징이 대세였던 1981년부터 2003년까지 약 3,000만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사이 동기유발 또는 코칭산업은 급격히 번창했다.

21세기에는 '래리 킹 라이브'나 '오프라 윈프리 쇼'같은 토쇼를 통해 긍정적 사고가 전파되고, 유명 복음 설교자들의 신학으로 채택되었으며, '긍정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지식 형태로 학계에까지 침투했다. 긍정적 사고는 미국에 국한되지 않고 우선 영어권에, 그리고 중국 한국 인도와 같은 성장국가들에도 확산됐다.

저자는 9ㆍ11사태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 2008년 금융위기까지도 지나친 긍정주의 때문에 위험에 대비하지 않아 일어났다고 진단한다. 긍정적 사고방식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개인의 욕구와 성장이라는 기업의 과제에 의존하는 소비자본주의와 함께 번창해 왔으며, 이제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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