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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무대 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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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무대 위의 사랑

입력
2011.04.0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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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타계했다. 세기의 스타임을 입증하듯 그녀의 사망 소식에 이어 출연작들과 함께 여덟 번의 결혼 이야기, 막대한 유산의 행방, 착용했던 보석, 그리고 어릴 적 쓴 연애편지와 앤디 워홀이 그린 초상화 경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끊임없는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두 번 결혼했던 리처든 버튼의 고향에 뿌려달라는 말을 남겼다.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각기 배우자가 있는 상태로 만나 렵게 결혼했지만 파경을 맞았던, 그럼에도 서로를 가장 사랑한 상대로 꼽은 안타까운 커플이다.

완벽한 미모와 아카데미 수상, 화려한 스캔들로 한 시대를 풍미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죽음. 바바라 스트레이전드의 말처럼 그녀의 죽음과 함께 한 시대가 끝났다. 그러나 그 시대를 빛나게 했던 존재감은 작품 속에서 지속될 것이다.

영화 속 젊은 시절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보며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과 영원히 함께하는 여인 헤리엇 스미드슨이 연상되었다. 베를리오즈의 여인이었던 스미드슨 역시 테일러와 같은 영국 출신 여배우이다.

스미드슨은 1827년 파리에서 열린 영국 세익스피어 극단의 ‘햄릿’공연에서 오필리아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녀에게 흠뻑 반한 음악원생 베를리오즈는 열렬함을 담은 편지를 여러 차례 보냈지만 한창 인기 높은 미모의 여배우가 학생의 팬레터에 관심을 둘 리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프랑스어를 못 읽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보낸 편지들이었다. 베를리오즈는 그녀를 위한 연주회를 열기까지 했으나 스미드슨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으며, 그녀의 남자관계 소문이 돌자 혼자 배신감에 휩싸여 ‘환상교향곡’을 작곡하기로 결심한다.

‘환상교향곡’은 각 악장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마치 오페라와 같은 교향곡이다. 당시로서 파격적 형식을 갖춘 곡의 내용은 실연한 젊은 예술가가 아편으로 자살을 기도하나 치사량에 못 미쳐, 자신이 좋아하던 여인을 살해하고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기괴한 환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실연(失戀)한 예술가가 베를리오즈이며 살해되는 여인이 스미드슨인 것은 당연하다. 5악장 ‘마녀들의 향연’에서 그녀를 상징하는 선율이 천박하게 표현되는 것은 베를리오즈식의 복수였을까.

스미드슨을 향한 절망과 증오로 ‘환상교향곡’을 구상했으나 정작 이 작품을 쓸 때는 다른 여인에게 청혼한 상태였다. 그 연애마저 실패해 상심하고 있을 때, 우연히‘환상교향곡’연주회에 참석해 사연을 알게 된 스미드슨의 연락을 받는다. 그토록 집착했던 여인과의 만남은 곧 결혼으로 이어졌으나 상황은 뒤바뀌어 있었다. 베를리오즈는 주목 받는 음악인이었고 그녀는 부상으로 배우를 그만둔 뒤였다. 정열로 시작한 그들의 결혼은 테일러와 버튼처럼 10여 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결국 베를리오즈는 훗날 두 번째 아내가 된 여인과 새로운 사랑에 빠지고, 스미드슨은 별거 상태로 지내다 병사하고 만다.

스미드슨은 얼마나 속상하고 비참했을까. 자신을 광적으로 사랑한 남자와 결혼했는데 초라한 모습으로 버림받았으니. 그녀 또한 베를리오즈가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이 아닌 무대 위의 오필리아였고 줄리엣이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를 소유하고자 더 부딪혔는지 모른다.

연극 무대에 다시 설 수 없었던 스미드슨이 ‘환상교향곡’이 낭만시대에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의 이름만은 음악의 무대에 영원히 남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덤 속에서라도 베를리오즈를 용서하지 않을까.

김대환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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