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정(48)씨는 1996년 LG전자 근무 당시 본사와 하청업체 사이의 비리 의혹을 회사에 고발했다가 사내 메일 수신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른바 '왕따 메일' 사건 등으로 집단 따돌림을 당하다 2000년 2월 해고당했다. 정씨는 2006년 한국투명성기구로부터 투명사회상을 수상하는 등 공익제보자로서의 역할을 인정 받았지만 복직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상대로 10년 넘게 외로운 법정투쟁을 진행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LG전자도 회사의 이미지 실추를 막기 위해 전관 출신 변호사까지 내세워가며 총력 대응해왔다.
해고무효 엎치락뒤치락
대법원 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정씨가 LG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정씨가 해고당하기까지 10개월여 동안 많게는 하루 녹음테이프 3개 분량으로 동료직원이나 상사와의 대화내용을 몰래 녹음했는데 부당한 대우에 관한 증거를 확보하려 했다는 동기를 참작하더라도 회사와 동료직원과의 신뢰 관계를 파괴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고가 징계재량권 범위를 벗어났다고 본 원심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2007년 4월 선고된 1심에선 LG전자가 승소했지만, 지난해 2월 선고된 항소심에선 "회사가 든 해고사유 8개 가운데 근무태만 등은 근거가 없으니 해고는 무효이고 미지급한 평균임금의 30%를 지급하라"며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이 확정되면 복직의 길이 열리게 되지만, LG전자는 멀쩡한 직원에게 누명을 씌워 쫓아냈다는 오명이 남게 될 판이었다. '예상치 못한' 판결이 나오자 LG전자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며 대응한 끝에 판결이 다시 뒤집힌 것이다.
하지만 정씨는 이날 "다른 민사소송에선 회사의 잘못이 인정돼 배상판결을 이끌어냈는데 이번 소송만 패소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아직 제출하지 않은 추가증거와 증인을 내세워 대응하겠다"고 말해 쉽게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손해배상 소송은 승리
해고무효소송은 결과가 엇갈리고 있지만 정씨는 LG전자와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모두 이겼다. 정씨는 집단 따돌림과 해고로 우울증 피해를 입었다며 구자홍 당시 LG전자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집단 따돌림 등 불법행위를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방치한 책임이 있다"며 2,000만원 배상판결을 받았다. 이 소송은 2008년 5월 대법원 선고로 확정돼 직장 따돌림을 방치한 경영진에게 책임을 지운 선례로 기록됐다. 정씨는 직장 '왕따'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보상해달라며 회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2,000만원 배상 판결을 이끌어냈다.
정씨는 자신을 무고한 LG전자 관계자들을 처벌해 달라는 고소에 대해 검찰 내에서 세 차례나 재기수사 명령이 내려졌는데도 무혐의로 처리되자 국가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 '검사 고유 권한인 불기소처분도 잘못됐다면 배상해야 한다'는 초유의 법원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폐해를 인정한 이례적인 판결로 평가 받았지만 항소심에선 정씨가 패소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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