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없는 한국의 당찬 대학생이었다. 그의 입에서 "탈북자"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가 탈북자임을 눈치채기 힘들었다. 서울 표준어 말투도 똑 부러졌고 태도도 적극적이었다.
탈북자 출신 숭실대생으로 구성된 봉사동아리 '숭실다움'의 회장 김금주(21ㆍ경영학과 2학년)씨는 31일 "탈북자도 남을 도우며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씨는 13살이던 2003년 동생(당시 11살)과 함께 남한으로 왔다. 밀수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북한 당국에 적발돼 부모님이 어디론가 끌려가고 조부모 손에서 자라던 중 남한에 있던 친척과 연락이 닿아 탈북을 결행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09년 숭실대에 입학했다.
김씨가 다른 탈북자들을 돕기 시작한 건 3년 전 탈북자 '그룹홈'(공동 생활가정)에서 생활하는 청소년들의 공부를 봐주면서부터이다. 당시 김씨가 도와주었던 윤모(당시 18세)양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발육 정도가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이었고, 친척들이 정착금까지 가로채 모든 의욕을 상실한 상황이었다.
"탈북 여성들도 노력한 만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걸 계속 말해주었고, 내가 그 모델이 되려 애썼습니다." 점점 마음을 연 윤양은 현재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 종교단체에서 남한의 젊은이들과 함께 탈북자를 돕기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 하지만 김씨는 "오히려 심한 외로움만 느꼈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에 참가한 남한 젊은이들까지도 탈북자들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몇몇 젊은이는 탈북자들에게 자신들이 발매한 음반을 파는 데만 관심이 있었죠."
그래서 김씨는 봉사단체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숭실대에 재학중인 10여명 동료 학생들과 함께 지난해 9월 숭실다움을 만들었다. 그는 "숭실대가 원래 1897년 평양 대동강변에 세워졌던 학교라 북한과 인연이 깊어 동아리 이름도 숭실다움으로 정했다"며 "탈북 대학생이 늘면서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동아리들이 생겼지만 봉사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동아리는 우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매주 한 번씩 서울 은평구에 있는 탈북자 결손가정의 영ㆍ유아 위탁소 '성모소화의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김씨는 "탈북 가정의 아이들이 남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남한사회의 다양한 경험을 해보며 자라야 한다"고 말했다. 남한의 여느 아이들처럼 피자가게에 데려가기도 하고 아쿠아리움 견학을 가기도 한다. 김씨는 "앞으로 각 대학에 봉사 동아리 만들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남북 가릴 것 없이 뜻이 맞는 대학생들과 모두 함께 하고 싶다"며 "탈북자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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