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4ㆍ27 재보선 분당을 출마를 선언하자 정운찬 전 총리 공천론이 한나라당 안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참패의 기억과 집권 후반기의 불안이 겹친 탓이겠지만, 군소 야당도 아닌 거대여당의 행태라고는 믿기 어렵다. 명분이 군색하고, 정치적 의리에 어긋남은 물론, 실리 계산조차 구체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애초에 공식 공천신청 절차를 매듭짓고도 누가 야당 후보가 될지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후속 후보확정 절차를 미룬 것부터 어색했다. 이번 재보선에서 유일하게 여당이 내놓은 자리는 꼭 차지하겠다는 강박관념을 감안하더라도, 공천 신청도 하지 않고 소극적 자세로 일관한 그를 꼭 내세워야 한다는 자세는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결여했다.
재보선에 대해 정 전 총리가 지금까지 취해온 자세는 상식적 언어ㆍ행동 분석에 따르는 한 "안 한다"이다.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없고, 좋은 기회였던 동반성장위원장 사임 시기도 놓쳤다. "절대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상식을 무시하려는 발상이 희한하지 않을 수 없다. "멍석만 제대로 깔면 나설 것"이라는 짐작을 부른 정 전 총리도 일말의 책임이 있지만, 무슨 수를 써서든 그를 끌어내려는 여당 지도부 일각의 자세는 지나친 고집이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내 특정 유력인사를 견제해야 한다는 의욕만 넘쳐 보인다.
우리는 상당한 수준이었던 정 전 총리의 경쟁력도 많이 퇴색했다고 본다. 세종시 수정안의 부결로 존재 의미가 희석된 데다 얼마든지 당당할 수 있었던 '초과이익공유제'논란에서 발을 빼면서 보인 자세는 실망스러웠다. 또 사실 여부를 떠나 신정아씨의 자서전이 '강직한 학자'의 이미지를 적잖이 해쳤다. 더욱이 과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당시 이미 보였던 정치적 우유부단과 소심함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여당은 검증되지 않은 채 주관적 기대만 담은 정 전 총리 카드를 언제까지 만지작거릴 것인가. 서둘러 후보를 확정해 당당하게 득표경쟁에 나서는 게 옳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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