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사진) 전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징계가 잘못됐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황 전 회장은 “금융권력 남용의 희생양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박정화 부장판사)는 31일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 재직시절 대규모 투자 손실로 받은 징계를 취소해달라며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제재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할 당시는 퇴직임원을 제재하는 규정이 없었고 나중에야 퇴직자도 제재할 수 있도록 입법이 이뤄졌다”면서 “금감위가 내린 직무정지는 나중에 만들어진 규정을 소급 적용한 것으로 행정법 불소급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당시 금융위는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 시절 법규를 위반하고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투자해 대규모 손실을 끼쳤다며 지난 2009년10월 황 전 회장에게 ‘직무정지 3개월 상당’의 제재를 내렸다. 그러나 징계근거가 된 은행법 제54조 2항은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에서 물러 난 후인 지난 2008년 3월에 만들어진 것. 황 전 회장은 금융위 제제를 받고 KB금융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금융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재판부가 징계의 절차적 하자 문제만 따진 것일 뿐 황 전 회장이의 거액손실 관련 책임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며 “판결문을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황 전 회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이번 법원 판결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게 돼 기쁘다”며 “전문경영인으로서 투자손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고 (KB 회장직에서) 물러날 수는 있어도 법을 위반한 경영자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금융당국의 항소에 대해서는 “잘못된 행정처분이라는 결정이 나왔는데도 국민의 세금으로 항소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하늘 끝까지라도 가겠다는 게 현재 내 심정이다”고 말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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