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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이 비 맞아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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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이 비 맞아도 될까요

입력
2011.03.31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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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길거리에서 비를 만났다. 우산 파는 데가 보이지도 않았고, 늦은 시간에 여기저기 우산 살 데를 찾아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큰 비가 아니니 잠깐 맞아도 상관없을 거라 싶었는데 고맙게도 행인 한 분이 우산을 씌워주셨다. 길거리에서 남의 우산을 같이 써본 것이 그야말로 오랜만이라 고마운 마음보다 멋쩍은 마음이 먼저 드는데, 그 우산 사양하지 않기를 잘 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우산을 씌워주는 마음

그날 비 내릴 거라는 예보도 알지 못했고, 정부 발표와는 달리 한국이 방사능 절대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도 알지 못했으니 내 미련함을 나중에야 깨달아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 행인의 마음 때문이었다. 다른 비는 몰라도 그 비만큼은 피하게 해주어야겠다 싶었을 것이다. 방사능에 오염된다고 해서 그게 전염병은 아니겠으나, 전염병인 감기보다 더 피하게 해주고 싶었을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마워서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렇다. 큰 위험 앞에서 위로가 되는 것은 뜻밖에 작고 소박한 도움들이다. 마음이 마음으로 건너가는, 서로에 대한 공감이다. 말하자면 우린 모두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며, 그 위험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안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국은 괜찮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일본이야 어찌 되었든 방사능이 한국에만 안 건너오면 괜찮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건 굳이 덧붙일 필요도 없겠다. 방사능의 공포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자연이 주는 재앙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최종의 재앙처럼 여겨진다.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삶의 질을 얼마나 많이 개선했는지는 어린아이들이라도 알 일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편리와 안전을 위한 과학기술이 오히려 인간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는 현실을 가리켜 위험사회라고 말하기도 한다’라는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실은 그 다음 말을 웅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먼저, 안심하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대통령은 그렇게 대국민 연설에서 말했고, 그 말을 믿게 하는 ‘편서풍 이론’이 전후로 발표되었다.

편서풍이 뭔가? 과학이론을 백과사전 혹은 국어사전 정도의 지식으로밖에는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과학 앞에서 갑자기 무기력해진다. 신뢰하자니 아는 게 너무 없고, 반박하자니 더욱 그렇다. 며칠 뒤, 한반도 곳곳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바람에는 세계를 한 바퀴 돌아오는 편서풍만 있는 게 아니라 멀리 돌 것 없이 직접 건너오는 바람도 있단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은 안전에 대해 정부나 대통령에게 물을 일이 아니라 바람에게 물어야 할 일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측정되고 있는 방사능은 인체에는 거의 무해할 정도의 미량이라고 한다. 그 말을 믿고 싶다. 안 믿는다고 한들, 당장 미역이나 다시마를 사러 나가야 할 것인가. 현실화한 위험 속에서, 그것이 전혀 위험하지 않은 정도의 것이라고 웅변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안 달래는 투명한 정보를

도움은 사실, 길거리에서 생각 없이 비 맞고 있는 행인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또 한 사람의 행인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우산 좀 같이 써요, 라고 말하는 행인에게 그 비 맞아도 안 죽어요, 라고 말하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런 말 들었다가는 아무리 마음 여린 사람이라도 울컥 화가 치밀지 않겠는가.

방사능에 관한 발표 시점이 늦어진 것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혹이 도는 모양이다. 그에 관한 정부의 해명은 의혹만큼이나 석연치가 않다. 방사능은 그야말로 전국민적인 불안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한 우산 속에 있는 것이다. 더 씌워달라고 할 우산이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불안을 확산시키고자 쓰고 있는 글이 아니다. 다만 보다 더 투명한 정보와 대책이 필요할 때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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