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말 베트남에 머무르고 있던 탈북자 468명이 1,2진으로 나뉘어 특별전세기 편으로 입국했다. 정부 당국은 남북관계와 향후 탈북자 문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군사작전 치르듯 비밀리에 일을 추진했다. 조용한 외교를 통해 탈북자 문제를 처리한다는 당시 정부 기조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러나 관련 사실이 일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산통이 깨지고 말았다.
탈북자 상황 악화시킨 언론보도
북측은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 등 남북대화를 전면 중단했고, 내부적으로는 탈북자 단속을 대폭 강화했다. 그 전까지는 탈북을 시도하다가 체포돼도 남측 인사와 접촉하지 않았다면 훈방 또는 몇 개월 노동단련대에 수용됐다가 풀려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탈북 시도가 처음이라도 1년에서 5년까지 징역형에 처해졌다. 수용 장소도 비교적 지내기가 수월한 노동단련대 대신 구타와 굶주림 강제노동이 일상화돼 있는 교화소로 바뀌었다. 탈북을 돕거나 방조한 국경 경비대원은 군사재판에 회부돼 처형되는 일도 벌어졌다.
베트남에서도 사단이 벌어졌다. 남북 동시 수교국 입장에서 북한의 강력한 항의를 받자 탈북자를 도왔던 한국인 6명에 대해 현지 사업체를 몰수하고 강제 추방했다. 탈북자의 불법 입국을 차단하는 조치도 강화했다. 중국이 탈북자 단속을 강화한 뒤 유력한 탈북자 입국 통로로 이용돼온 베트남 루트가 막힌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대대적 보도가 탈북자 문제에 대한 국외의 관심을 환기시킨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대가가 너무 컸다. 남북관계가 회복되는 데는 2년 가까운 시일이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탈북자들의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북한 내부에서 처벌과 감시가 배가됐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 일대를 떠도는 탈북자들은 더욱 고달파지고 위험도 커졌다. 한 보수 언론이 심층 현지취재를 통해 동남아 여러 나라의 탈북 루트를 상세하게 보도한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탈북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탈북자를 힘들게 만드는 사례는 많다. 지난주 중국 어선을 이용한 탈북자 기획입국도 그렇다. 입국을 주선한 종교인은 중국 옌타이 (煙臺) 주택가와 아파트에 탈북자들을 분산해 숨겨 놓았다가 돈을 주고 어선에 태워 공해상에서 우리측 배에 옮겼다고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언론에 소개했다. 그렇지 않아도 탈북자 색출에 혈안이 돼 있는 중국 공안에 좋은 정보를 제공해준 셈이다. 우리 교포들이 탈북자를 도운 사실도 밝혔는데, 그 교포들이 무사할지나 모르겠다.
중국에서 탈북자 단속이 심해진 것은 2000년대 초 일부 대북 종교 및 운동 단체의 기획 탈북 시리즈 탓이 컸다. 언론에 미리 통보해 탈북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외교 공관의 담을 넘는 장면을 찍어 보도하도록 기획한 것은 중국과 북한 당국을 극도로 자극했다. 그 결과 중국 공안의 단속이 심해져 탈북자들의 중국체류 고통은 한층 커졌고, 북ㆍ중간 탈북자 송환 협정 강화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는 탈북자들도 늘었다.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 앞에 놓인 운명은 탈북기획 단체들이 더 잘 알겠지만 탈북자 인권 보장 및 강제송환 중단을 촉구하는 그들의 외침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분노로는 부족, 절제·지혜 필요
대북 전단 살포 단체들의 요란한 풍선 띄우기 이벤트도 요즘 톡톡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언론에 보도 자료를 내고 행사 현장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홍보하니 '조준 격파사격'의 표적이 되고, 급기야 위협을 느낀 지역주민들의 완강한 저지로 행사 자체가 무산되는 일이 잦아졌다.
기획 탈북과 전단 살포를 요란하게 홍보하는 데는 관련 단체들간의 경쟁심, 지원자금 확보 필요성, 아니면 다른 정치ㆍ종교적인 목적이 개입돼 있을지 모른다. 순수하게 북한의 가혹한 인권상황에 대한 분노, 북한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해도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면 다 무슨 소용인가. 진정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분노만으로는 부족하다. 절제와 지혜가 빠져서는 안 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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