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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배고픔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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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배고픔의 기억

입력
2011.03.3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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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아일랜드에서는 감자마름병이 돌아 주민 200여 만 명이 굶어 죽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리고 비슷한 수의 주민이 생존을 위하여 고향을 떠나 이민의 길을 떠났다. 지금도 배고픔으로 집을 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상징하는 ‘아일랜드의 눈물’이라는 촛불이 총리 집무실에 1년 365일 켜져 있다고 한다. 대기근은 곡절 많은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아픈 역사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그 고통의 기억이 세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남아있다고 한다.

북한주민 굶주림의 상처

피해의 범위가 넓고 깊었던 역사적 사건의 상처(trauma)가 한 시대를 넘어 지속되는 것은 아일랜드의 경우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홀로코스트(holocaust)의 기억이 지속되고 수백만이 죽고 다쳤던 한국전쟁의 상처가 오늘날도 여전한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아사자가 생겼던 북한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에 이른다는 증언이 엇갈리고 있지만, 어떤 경우든 북한사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북한체제의 존속이나 통일 여부에 상관없이 아주 오랜 기간 지속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식량 위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식량 위기의 원인과 관련해 사회주의의 구조적인 문제, 주민을 신경 쓰지 않고 핵무기 개발 등 정권 보위에만 집중하는 집권층의 존재, 외부의 압박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이유야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오늘도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이다. 2월과 3월 사이에 북한을 방문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유니세프(Unicef)는 북한 주민 2400만 명의 4분의 1이상이 굶주림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합동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특히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성장 부진과 저체중 상태에 빠져있고, 당장 필요한 식량이 100만 톤이 넘는 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반대는 우리 안에서 여전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 등이 40여 만 톤 지원을 건의하고 미국도 인도적 지원에 나설 분위기이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이 식량을 비축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보수적 인사들은 여전히 군량미 전용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어린이들도 커서 군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식량을 주어서는 안 되고, 북한을 지원할 바에는 아프리카 난민을 도와야 한다는 보통 시민들도 적지 않다. 더 나아가 어느 유명한 컬럼니스트는 “아들 세대가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손자 세대를 살리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의 투명성 문제를 제기하거나 식량지원이 북한의 권력층에 이득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다. 또한 핵무기 개발과 군사력 유지를 포기하면 식량 조달이 가능할 것이라는 비판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 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 굶고 아픈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이다. 이들 대부분은 늘 그러하듯 힘 없는 민초들이고 기댈 데 없는 어린이와 노약자라는 점이다. 굶주림 발생의 책임이 우리에게 없더라도, 정치적인 이유로 굶주림을 방치한다면 인도적 차원에서나 역사적 차원에서나 우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통일 되면 뭐라 말할까

아일랜드 대기근에서 더욱 문제가 된 것은 당시 감자 이외에 식량이 생산되었고 그 식량들이 식민지배국 영국으로 송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경험은 영국에 대한 깊은 원한의 뿌리가 되었다. 경우는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이유야 어쨌든 같은 민족으로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기차 손님이 던지는 음식을 주워 먹는 북한 아이들과 국제기구의 대북지원 소식을 접하면서, 통일이 되었을 때 굶주림으로 식구를 잃은 북한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하는 걱정에서 하는 말이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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