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이 시기일까.
일본 정부가 30일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한층 강화한 중학교 사회교과서 검정결과 발표를 강행한 이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11일 발생한 도호쿠(東北) 대지진과 이후 후쿠시마(福島) 원전사태로 전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에 대해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 한국 등이 반발할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토문제는 물론, 일본 식민지배의 민감한 내용들이 담긴 교과서 검정결과를 예정대로 발표할 경우 상당한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본이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 지진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라도 발표 시기를 늦춰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일본 관료들은 일본이 철저히 정해진 매뉴얼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과서 검정결과는 처음부터 이날 발표하기로 돼있던 만큼 지진 때문에 내용이 달라질 것도 없고, 발표를 연기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문부과학성 한 관계자는 "이번에 실린 내용들은 2008년 7월의 정부 지침에 따라 각 출판사가 3년여에 걸쳐 준비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정치적 판단으로 발표를 연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제기된다. 하지만 대지진과 원전사태 수습을 둘러싸고 리더십 부재에 대한 강한 비판을 받는 간 총리로서도 야당과 우익단체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는 교과서 문제에서 운신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바닥까지 떨어진 지지율, 참모들의 잇따른 실언, 사퇴압박 등 악재가 널려 있는 판에 교과서 문제는 특히나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간 총리는 지난 달 한ㆍ일기독교의원연맹에서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도이 류이치(土肥隆一) 중의원 의원을 강도높게 비난 한 적이 있다.
어쨌든 일본 정부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발표를 강행하는 것이 매를 덜 맞는 길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지진 등에 따른 인도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 등 관련국의 반응도 '정상참작'이 되지 않을까 기대감도 있었음직하다. 일본 내에선 NHK방송 등이 원전 속보를 내보내느라, 이날 저녁뉴스에서야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 대해 짤막하게 보도했다. 아사히(朝日)신문, 지지(時事)통신 등은 내년도 중학교 교과서의 분량이 기존에 비해 25% 가량 늘어나는 등 교과내용이 한층 강화됐다는 내용을 강조해서 다뤘으며, 독도와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ㆍ釣魚島)를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언급한 교과서가 늘었다는 부분은 간략하게 지적하는데 그쳤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발표시기가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며 "양국 관계를 냉각시키고 한국 국민의 반일 감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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