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일(80) 한국야구위원회(KBO) 초대 사무총장은 2011년 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1981년 12월 KBO 사무총장에 선임된 이 전 사무총장은 프로야구의 산파이자 살아 있는 역사다. 이 전 총장은 김응용 전 삼성 사장, 김인식 전 한화 감독과 함께 지난 28일 프로야구 30년 공로상을 받았다.
1982년 3월27일 MBC-삼성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닻을 올린 한국프로야구가 지난 27일로 출범 30년을 맞았다. 이 전 총장은 “돌아보면 KBO 사무총장으로 지냈던 10년 세월이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되고 즐거웠던 시간들이었다”고 회고했다.
한국프로야구를 탄생시킨 주인공인 이 전 총장을 지난 24일 오후 서울 소공동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여든 살 고령이지만 이 전 총장은 여전히 청년 못지않은 기백을 자랑했다. “지금도 어지간한 거리는 거뜬히 걸어 다닌다”는 이 전 총장은 “몸은 현장을 떠났지만 늘 야구 뉴스를 접하고 야구 관련 서적을 보는 게 건강의 비결인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고교야구에서 얻은 힌트, 철저한 지역연고
1981년 봄, 이 전 총장은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당시 이 전 총장은 대한야구협회 전무이사였다. “우리나라도 프로야구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이미 야구인들 사이에서는 프로야구 창설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얻고 있을 때였다.
“좋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이 전 총장은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프로야구 육성계획’이라는 기안을 만들었다. 이 전 총장은 1979년 실업선수들이 출신 고교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던 이벤트 대회였던 ‘야구대제전’에서 힌트를 얻었다.
“프로야구는 철저한 지역연고가 바탕이 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죠. 그런데 그 안건을 청와대에 제출했더니 ‘지역감정을 더 부추기는 것 아니냐’며 고개를 가로젓더군요. 그래서 나는 ‘운동장 안에서 지역감정이라면 건전한 애국심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결국 제 의견이 관철됐어요.”
▲한국야구의 비약적 발전은 3,000억원 이상 투자한 모기업들 덕분
“한국야구는 지난 30년 동안 정말 많이 발전했지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이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준우승은 야구인들의 노력과 땀의 결실입니다.” 이 전 총장은 프로야구 출범 후 30년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그렇다고 야구인들만 잘했다는 것은 아니에요. 야구? 그냥 하는 게 아니잖아요. 원년부터 프로야구에 참여하고 있는 모기업들의 공은 대단한 거지요. 30년 동안 프로야구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지금까지 3,000억원 이상은 투자했을 겁니다. 그걸 당연하다고 보면 안 돼요.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프로스포츠는 비즈니스, 흑자와 전력평준화만이 살 길
이 전 총장은 미국프로풋볼(NFL)에서 1961년부터 28년간이나 커미셔너(총재)를 지냈던 피트 로젤을 프로스프츠 단체 수장의 모델로 들었다. 이 전 총장은 “로젤이 커미셔너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NFL 구단들은 적자에서 허덕였다”며 “그런데 로젤이 커미셔너가 된 뒤로 모든 마케팅이 커미셔너 주관 하에 진행됐다. 그 결과 NFL은 연간 3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그 돈은 고스란히 구단들에 분배됐다”고 설명했다.
“NFL에서는 3년 연속 우승하는 팀이 거의 없어요. 벌어들인 돈으로 구단들이 선수 영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팀간 전력이 평준화된 거죠. NFL이 메이저리그 못지않은 인기와 수입을 올리는 비결 중 하나가 ‘내가 응원하는 팀도 우승할 수 있다’는 팬들의 기대감이 자연스럽게 흥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전 총장은 이어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버드 셀릭이라는 유능한 커미셔너가 취임한 이후 30개 구단 모두 수익을 내게 됐다”며 “그 덕분에 콜로라도나 탬파베이 같은 스몰 마켓(Small Market) 구단들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취임 초기 40만 달러이던 셀릭의 연봉은 구단주들의 합의로 최근에는 1,835만 달러까지 뛰어올랐다”고 강조했다.
▲총재 중심의 리그 집권제에 한국야구의 미래가 달렸다
이 전 총장은 한국야구의 나아갈 길로 리그 집권제를 제시했다. 리그 집권제란 커미셔너 중심으로 리그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그 안에서 구단들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반면 구단 분권제는 개별 구단 중심으로 리그가 운영되는 것을 의미한다.
“메이저리그가 리그 집권제라면 일본과 한국은 구단 분권제이지요. 그런데 프로야구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이 많은 일본이야 설령 한 구단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한국은 달라요. 현대가 문닫았을 때 인수할 기업이 없어서 KBO 총재가 쩔쩔맸던 게 엊그제일 아닌가요?”
쌍방울에서 구단주대행도 역임했던 이 전 총장은 커미셔너는 기업의 CEO(최고경영책임자)라고 했다. “제대로 일하는 커미셔너가 절실해요. 커미셔너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될 때 한국프로야구도 학수고淪求?흑자시대를 열게 됩니다.”
▲30억원짜리 선수 나오면 저변확대는 자동으로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은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 한국의 고교야구팀 숫자가 50여 개인 데 반해 일본은 4,000개가 훨씬 넘는다. 단순 비교로 1대80이다.
KBO와 대한야구협회, 프로야구단들은 야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매년 전국의 초중고교 팀들에 장비와 후원금 등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 전 총장은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프로야구의 모든 수입은 선수들한테 나옵니다. 이 수입이 구단들에 잘 분배되고, 또 구단들은 그 수입을 선수들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봉 30억원짜리 선수가 나온다면 서로 야구 하려고 앞을 다툴 거예요.” 한국에서는 김동주(7억원ㆍ두산), 미국에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350억원ㆍ뉴욕 양키스), 일본에서는 다르빗슈 유(68억원ㆍ니혼햄)가 연봉 1위다.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이 전 총장은 요즘 집필을 구상 중이다. 이 전 총장은 “조만간 책을 한 권 쓸 생각인데 제목은 ‘30억원, 40억원짜리 선수를 육성하라’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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