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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사립대, 관치 악몽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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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사립대, 관치 악몽 잊었나

입력
2011.03.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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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의 실상을 압축하는 조어 중 하나가 '경쟁 노이로제'다. 학과와 학교 간의 랭킹 경쟁, 글로벌 경쟁, 학생 유치 경쟁, 재정 확보 경쟁(사립대에만 적용된다), 졸업생 취직시켜 주기 경쟁…. 상아탑엔 온통 경쟁뿐이다. 총장이나 교수, 교직원, 학생 등 모든 학교 구성원들이 "피곤해 죽겠다"고 하소연한다. 대입 정원이 고교 졸업생수를 한참 초과하는 정원 역전 현상이 10년 안에 현실화할 게 분명해지고, 이 경우 예상되는 '대학의 몰락'에 대비해 너도나도 안전판을 모색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대학 CEO 간의 위험한 충돌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양태들이 얼마나 많고 다양하겠는가. 학교 최고 경영진 입장에선 구성원들을 들들 볶고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생존 담보를 장담하기 힘들 거라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대학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니. 대학 구성원들을 먹여 살려야 하고 사회 기여 또한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캠퍼스 CEO가 재단 이사장과 총장일 것이다. 고등교육 분야에선 쌍두마차 같은 존재들이다.

대학 사회에서 회자(膾炙)되는 불변의 진리가 있다. 이사장과 총장이 찰떡 궁합을 과시하는 학교는 흥하고, 반대의 경우 십중팔구 침체의 길을 걷거나 수렁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총장을 교수 직선으로 뽑든 이사회에서 선임하든 예외를 찾긴 어렵다. 개교한 지 수십 년이 넘는 명문 사립대가 대충 전자(前者)의 범주에 든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정부 통제를 받는 임시이사 체제에서 설립자 측에 학교 운영권을 돌려준 정이사 체제로 전환한 지 얼마 안 된, 꽤 규모가 큰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이해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사장과 총장의 갈등이 아닌 설립자 측(정확히 말하면 명예 이사장이다)과 총장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상황이 생겼다. 교수 및 직원 인사와 학교 운영 같은 주요 업무를 놓고 서로 "나의 결정을 따라 줬으면 좋겠다"는 식의 설전이 툭하면 벌어진다. 한 치의 양보도 없지만, 단판 승부에서 이기는 쪽은 늘 명예 이사장이라고 한다.

어느 쪽이 잘못됐나.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양비론으로 규정짓고 싶다. 둘 다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명예 이사장의 '월권'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아무리 사재를 출연해 대학을 만든 설립자 측이라고 해도 사학법을 무시한 권한 밖의 행태임에 분명하고, 동시에 이사장을'핫바지'로 만드는 처사가 아닌가. 지혜롭지 못한 총장의 처신도 도마에 올라야 마땅하다. 어렵사리 정상화를 이룬 대학의 경영자라면 재단이나 설립자 측과의 '행복한 동행'은 필수적이다. 명예 이사장과의 불필요한 충돌에 따른 학내 분규가 가져올 파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러니 "사학은 시장 원리에 맡겨선 안 된다"는 생각을 교육 관료들이 하게 되는 것이다.

사학을 사회공동체로 알아야

오랜 관치(官治)를 뒤로하고 겨우 정상화의 첫 발을 뗀 지방의 한 사립대도 비슷한 사례가 목도된다. 학내 소요를 말려도 시원찮을 총장이 되레 중심이 돼 설립자 측의 재단 이사진 참여에 딴지를 걸고 있다고 한다. 설립자 측을 비리 집단으로 못박아 재단 진입을 봉쇄하겠다는 발상이다. 설립자 측은 근거 없는 비방이라며 임전무퇴(臨戰無退)의 태세다. 이럴 때 이사장의 역할이 중차대할 법도 한데도 해결사를 자처하기는커녕 고개를 돌리기 일쑤다. 시어머니 눈치만 보는 며느리 같은 행보에 머물러 있다.

사학의 발전 여부는 따지고 보면 간단한 이치가 적용된다. 이사장이나 총장의 머리 속에 사립대를 소유의 개념에서 싹 지워버리는 것이다. 사회 공동체의 한 영역으로 인식한다면 꼬인 갈등의 실타래를 풀기란 그리 어려운 과제는 아닐 것이다.'임시이사 파견 대학'은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김진각 편집위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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